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한 일주일동안, 내 핸드폰은 고장 났었지만 나는 핸드폰을 쓰는 버릇, 핸드폰이 만든 세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핸드폰적 구조'란 핸드폰이라는 기기가 만들어내는 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핸드폰적 구조는 개별자들의 행위 양식과 그 양식의 관계를 결정하는 '테크놀로지의 네트워크'를 의미한다. '핸드폰'이라는 항에 문제가 생기면 '컴퓨터'라는 항이 이를 대체한다[컴퓨터를 통해 문자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고 내게 수신되는 문자의 내용도 알 수 있다. 물론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있을 때에 한에서]. '나의 핸드폰'이 고장나면 '너의 핸드폰'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고장 난 나의 핸드폰은 '정지'해 있지만 너의 핸드폰의 사용빈도가 그 고장과 정지를 대신해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흡사 보로메오 고리처럼 핸드폰적 구조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니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거나 '핸드폰만 없으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식의 다짐과 기대가 얼마나 낭만적이며 심지어 허영에 찬 것인지를 알아차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핸드폰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기기들이, 잘 짜여져 있는 체계가, 바로 그 장치들의 네트워크가 핸드폰을 대신한다. 아니, 핸드폰을 대신한다고 착각하게 한다. 핸드폰은 이 체계의 '척후병'에 불과하다. 우리이 그 척후병에 전멸하는 나약한 병사일뿐. '핸드폰'을 쓴다는 것은 특정한 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핸드폰'이란 무엇인가? 그것을 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늦었지만 이제라도 그것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1. 오래 쓴 핸드폰이 '예정'대로 고장이 났다. 핸드폰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던 관계에 부주의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별다른 불편함도 없었다. 아마도 다시 시작한 세미나를 진행하는 데 별문제가 없어서 일 것이다. 다소 평화로웠지만 그 평화는 핸드폰의 고장에 의해 덤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세미나에 의해 획득한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2. 누군가 내게 '핸드폰이 고장 난 건 상대에게 폭력이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부주의하게, 조금의 진정성도 없이 했다. 그(녀)는 세일(sale)을 하는 백화점에 달려들 듯, 1+1으로 묶인 상품을 낚아채듯 쉬는 시간이고 뒷자리고 상관없이 자신이 궁금한 것들을 강연자에게 퍼부어대었고, 나는 조금, 낙담했다. 그것은 대중강좌에 참여한 그(녀)의 소비자적 태도에서가 아니라 그 정도가 대중강좌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라는 직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낙담했던 것은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이가 그 공간에 아무도 없었다는 데 있다.
3. 으리으리한 백화점 한 귀퉁이에서 k 선생님께 드릴 장갑을 열심히 골랐다. 매가 먹이를 낚아채는 듯한 눈빛으로 '어지럽게' 도열해 있는 장갑들을 뺐다 넣었다 열심을 부렸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는 것에 꽤나 인색한 편인데[책만큼은 예외이지만 늘 책을 사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니 그건 엄밀하게 말해 '선물'의 축에 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것만이 선물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타인을 향해 무언가를 건네는 행위란 내 너머로(pro) 무언가를 던지는(-ject) 것이 바로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k 선생님께 드릴 장갑을 열심히 고르면서 '작은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이 게시물은 그 작은 보람을 기억해두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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