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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김반 일리히 일기(2) 반찬 생각

by '작은숲' 2012. 2. 26.



모처럼의 휴일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 건 단 하나의 문장도 읽거나 쓰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두칼국수를 먹기 위해 <성원 만두집>에 갔다. 한동안 손님이 없었는지 늘 김이 서려있는 창문이 깨끗했다. 0.5평도 안 되는 공간에 시어머니(추정)와 며느리가 <러닝맨>(소리로 추정)을 보고 있었다. 후덕한 인상의 여주인(며느리)은 냉큼 일어나 국수를 삶는다. 그러나 하루의 첫번째 끼니인 내 앞에 도착한 칼국수는 완전히 익지 않았다. 핸드폰을 꺼내 저장해두었던 <한국일보>에 실렸던 가라타니 고진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서 칼국수가 익기를 기다렸다. 인터뷰는 싱거웠고, 칼국수는 좀처럼 익지 않았다. 단무지를 두 개째 먹다가 반찬이 없어지면 세계는 지금보다 조금 더 평화로워지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베트남이었는지 홍콩이었는지 중국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긴 젓가락으로 굉장히 빨리 그릇에 담긴 음식물을 먹던 무명의 영화 배우가 떠올랐다. 나는 '정식'이 아니고는 식당에서 나오는 반찬을 잘 먹지 않는다. 여타의 요리나 음식을 먹을 때도 가능하면 양념장이나 김치 등의 반찬을 겯들이지 않는 편이다. 식자재 그 자체의 맛을 음미하는 게 더 즐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에 조금 민감하다. 결코 '미각'이 발달한 것은 아니나 별스럽게 민감한 부분이 있다. 사소한 미각을 만족시키기 위해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가. 문제는 반찬의 가지 수가 아니다. 자극이 없으면 한 시도 견디질 못하는 '미각', 자본주의에 초토화되어버린 '혀'. 문제는 거기에 있다. 문득 연인들은 섹스를 줄이고 자위를 늘여야 한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우리들의 '미각'에도, 관계에도 '양생술'이 필요하다.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는 자기배려의 기술(고미숙)로써의 '양생술'말이다. 여주인은 TV앞에서 뜨개질을 하며 <런닝맨>을 관람하고 있다. 대개의 식당은 TV가 밖으로 노출되어 있지만 <성원 만두집>의 TV는 '관계자'만 볼 수 있다. 덜 익은 칼국수에 대한 보상 심리로 <이디야>에 커피를 마시러 간다. 지난 달, 가능하면 밖에서 커피를 사먹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지만 오늘은 휴일이니, 단 하나의 문자도 읽거나 쓰지 못했으니, 약간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카푸치노 한잔을 사 마신다.

 


*하단동에 있는 한 인테리어 사무실 입구다. 반찬이 줄어든다면, 우리의 미각이 지금보다 단순해진다면, 우리들의 '혀'가 자본의 사타구니를 탐하는 것을 그치고 다른 것을 보살피는 데 애를 쓸 수 있게 된다면 이런 인테리어 사무실이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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