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보내는 한 통의 편지
보내야 할 중요한 편지를 쓰지 못한 채 겨울을 맞이합니다. 서랍 안의 장갑이 손의 증거인 것처럼 보내야할 편지가 있다는 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증표라고 해도 좋을까요. 쓰지 못했고 그래서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매일매일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편지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당신에게 도착할진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제게 먼저 편지를 보내주었기에 오늘도 저는 당신에게 답장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편지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편엽서처럼 멀리서 도착하는 짧고도 반가운 메시지가 아니라 언제 보낼지 기약할 수 없지만 노트에 쟁여가는 편지말입니다. 세상에 보내는 한 통의 편지. 오직 한 사람에게 가닿기를 열망하면서, 쓸 수 없는 내용으로 채워가는 매일의 기록. 그런 편지를 닮은 영화를 편지지 삼아 당신에게 답장을 씁니다. 당신께 전하고픈 말이 이 영화에 스미고 물들어 작은 얼룩으로 변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부디 당신이 그 얼룩을 알아봐주었으면 좋겠어요. 무슨 글자인지 읽을 수 없다면 그 얼룩을 오랫동안 바라보아주길, 가만히 쓰다듬고 매만져주길.
이 영화가 우리의 우표가 되어줄 겁니다. 극장의 불이 켜지기 전에 잠시 숨을 참고 기도합니다. 세상의 편지(모든 편지는 누군가로부터 받은 편지에 대한 답장이겠지요)가 멀리까지 갈 수 있기를, 가까이에 있는 당신에게도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를, 오늘의 당신이 무사하기를, 당신이라는 우편함이 누군가의 편지가 도착하는 안식처이기를.
◈ <기억할 만한 지나침>(박영임, 순리필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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