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2024. 6. 8
며칠 동안 수업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래가 끓고 목이 잠겼는데, 이렇다할 이유를 찾진 못했다. 이럴 때 몸과 마음을 더듬어보게 되는데, 적어도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달치 정도는 챙길 수 있어야 하지 싶다. 먹고 자는 일, 마음 쓰고 생각한 것들를 차분히 챙긴다면 목이 잠긴 까닭을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어제 일도 가물거리는 형편이다. 나날이 나빠지는 게 아니라 천천히 나아지고 있어서 가볍게 뛰어봐야겠다 싶었다. 달리기가 이럴 때 몸과 마음에 어떻게 이바지 하는지 살펴보고도 싶고, 혹은 얼마나 훼방을 놓는지도 궁금해서 여느 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나섰다.
달리다가 힘들다 싶으면 언제라도 멈추고 돌아갈 수 있는 ‘장림-다대포해수욕장’ 길이 나아보였지만 감천항을 끼고 달리고 싶어 그쪽으로 들어섰다. 은근한 내리막과 꽤나 힘차게 올라야 하는 언덕이 있고, 오가는 차가 거의 없어 홀로 달리기 좋은 길이다. 봄에 가랑비가 내릴 때 이 길을 참으로 즐겁게 달렸던 날이 떠올랐다.
대개 밤 11시 넘어서 달렸던 것과 달리 10시쯤에 달리니 이웃나라에서 온 일꾼으로 보이는 이들을 여럿 지나치게 된다. 모두 감천항 쪽으로 가는 길인 듯한데, 그쪽에 마을이 있는 건 보지 못했는데 이들이 묵는 곳이 따로 있나보다. 뒷모습으로, 냄새로, 낯선 말로 이들이 살았던 나라를 그려보며 조심스레 지나쳤다. 텅 빈 도로에 큰 트럭만 가득했던 길 한켠에 이웃나라 일꾼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도 보게 된다. 저곳이 쉼터였구나. 버려진 곳이라 여겼는데 편의점 옆 공간에 여럿이 둘러앉아 왁자지껄해보인다. 사람이 없을 땐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곳이 쉼터겠구나 싶기도 하다.
더 천천히 달릴 생각을 하지 않고 더 신나고 즐겁게를 생각해서인지 요즘 자꾸 빨라진다. ‘작게’라는 낱말을 입안에 넣어둔 사탕처럼 내내 머금고 달렸다. ‘크게’가 아닌 ‘작게’라는 낱말을 내내 곁에 두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일, 그럼에도 애쓰는 일>이라는 고리는 여전히 내 살림을 끄는 두 바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바퀴가 ‘크게’가 아닌 ‘작게’ 곁에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작게’가 숫자나 크기를 나타내는 낱말이 아니라는 걸 조금씩 알아간다.
‘작게’를 입안에서 공글리다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잘다’라는 낱말을 떠올렸는데, 잘 하는 길은 ‘크게’가 아니라 ‘작게’에 있다는 걸 가리키는 듯 했다. 실은 잘 하고자 하는 마음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 앞에서 매번 떠올리는 건 밥 짓는 일이다. 어느 한 순간도 귀찮거나 어렵다고 여긴 적이 없고, 잘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이 즐겁게 하고 마음껏 누리는 일. 이런 살림을 늘려가며 살림에 기대어 살아야겠구나 싶다.
작게라는 살림
작게작게라고 하면 시가 되고
작게작게작게라고 하면 노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