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꼬리라고만 말할 수 있다면

작은 숲 2024. 10. 5. 22:31

2024. 10. 5


자고 일어났더니 꼬리가 생겼다! 아이 몸은 날마다 달라진다. 달라지는 몸을 가장 빨리 알아차리는 건 아이다. 아직 뼈가 여려 잘 다치기도 하지만 잘 자란다고도 할 수 있고, 잘 바뀐다고도 할 수 있다. 이 그림책은 달라진 몸을 알아차리는 일이 어린이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돌보는 일과 이어진다는 눈길을 담았다.

나를 가장 알 안다고 여긴 엄마 눈에 보이지 않는 꼬리가 동무 눈엔 보인다. 어른들 눈엔 보이지 않는 게 어린이들은 알아본다. 이건 그저 이야기 설정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라 작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 서고, 편견없이 바라보기 때문에 아이들 눈엔 보인다는 뜻을 담았다고도 볼 수 있다. 

어린이 몸이 달라지는 걸 곧장 ‘2차 성장’이라고만 봐선 안 되지 싶다. 스스로 몸을 살피는 일은 저절로 마음을 돌아보는 일과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에서 꼬리는 ‘거치적거리는 것’이지만 이를 서둘러 떼내거나 해결하려고 하기보단 ‘복슬복슬’ 하다거나, 거울에 비춰보니 멋진 꼬리라고 보거나, “부드럽고 푹신푹신한 쿠션” 같다고 느낀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마을 사람들에게도 꼬리가 달려 있다는 걸 알아보는 까닭은 무엇보다 스스로 달라진 몸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내 몸이 바뀐다는 걸 안 ‘영우’는 다른 사람 몸도 ‘바뀔 수 있는 몸’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그림책엔 ‘다른 몸’을 가진 마을 사람들 표정이 ‘시무룩하거나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라는 정도로만 말하는 것을 미루어볼 때 ‘몸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진 않지만 이를 잘 바라보면 ‘다른 몸’을 바라보는 눈길을 틔울 수 있는 결을 담았다고도 바라볼 수 있다. 

어제 처음으로 다투었던 단짝 친구(수찬)에게도 토끼귀가 솟아난 걸 보고 종일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던 둘은 서로를 바라보면 활짝 웃는다. 그리곤 이내 서로를 향해 미안하다며 손을 내민다.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느끼고 있구나라는 마음결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다시 화해한 영우와 수찬에게 꼬리도 토끼귀도 어느새 사라졌다. 

어린이는 미안한 마음이나 불편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다.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또 드러내는 어린이라는 여린 결을 자고 일어나니 갑자기 꼬리가 생긴 이야기로  풀어냈다. 한글판은 『꼬리가 생긴 날에는?』이지만 일본어판은 그저 『しっぽ!』[꼬리!]다. 한글판은 줄글로 설명하고 일본판은 꼬리라는 낱말 하나로 충분하다. 하나는 물음표를 달아 궁금증을 푸는 길로 이끈다면 하나는 느낌표를 달아 놀람과 기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아마도 ‘꼬리!’라고만 쓰면 이 이야기가 담은 결을 잘 살리지 못한다고 여긴 듯하다. 그건 우리가 낱말을 어떻게 대하며 아이들에게 알려주는지를 가리킨다. 낱말 하나가 품은 뜻과 결을 살려 쓰며 이를 어린이에게도 차근차근 알려준다면 굳이 줄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한글판 제목도 ‘꼬리!’라고만 쓸 수 있는 날이 올까? 
 

 

다케시타 후미코 [글] ・ 나가노 도모코 [그림], 고향옥 옮김, 『꼬리가 생긴 날에는?』, 천개의바람,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