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숲 2024. 11. 22. 21:17

2024. 11. 17

 

손수 밥을 지어 먹을 때마다 빠짐없이 ‘정말 맛있구나’라 여겨져 즐겁다. 내 어머니는 이런 나를 떠올릴 때마다 혼자서 밥해먹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얼마나 힘드냐고 걱정하시지만 아주 가끔 몸이 아플 때를 빼곤 힘들거나 귀찮다 여긴 적이 없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또 어찌보면 꽤나 놀라운 일이다. 요즘은 살림을 흐르게 하는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일에 대해 곰곰 생각해볼 때가 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까지 얼추 1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300m 정도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해서 비가 많이 오거나 많이 지칠 땐 가끔 택시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고, 늘 조금도 힘들지 않다 여긴다. 집으로 가는 길이니 당연하지 않나 싶다가도 문득 이 힘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오늘은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들러 매형이랑 조카 지우랑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가 파인애플 3개와 사과 8알과 고춧가루 한 병이 든 꾸러미를 챙겨주셔서 한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가며 8년 동안 이 오르막길을 오르며 힘들다거나 지친다는 마음이 든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걸 떠올린다. 당연하면서도 새삼 놀라운 이 힘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어떻게 흐르는 걸까, 언제까지고 흐르게 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40년 넘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걸어온 셈이다. 

20년을 넘게 살았던 수정동집은 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우리집에 들렀던 거의 모든 사람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곤 했는데, 나는 그때도 집으로 가는 길이 힘들다 여긴 적이 없었다. 가파른 오르막, 끝없이 이어지던 계단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르내리곤 했다. 대학원 시절, 지하철 막차를 타고 부산진역에서 내려 성북고개까지 30분 넘게 걸어올라갈 때도 언제나 즐겁고 힘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참으로 좋아했다는 걸 이제야 알아차린다. 가족이 잠든 집을 향할 때나 아무도 없는 집으로 갈 때나 다르지 않았다. 

어찌보면 40년 넘게 오르막길을 오르며 집으로 돌아간 셈이기도 한데, 이 가파른 길이 나를 북돋아주었구나 싶다. 오르막은 힘차게 내딛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오르막길을 노래를 흥얼거리며 오르내렸기에 지금도 힘차게 내딛으며 오르내릴 수 있는 거로구나, 오르막길이 나를 키웠구나,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북돋아주었구나. 그러니 오르막길은 내게 ‘오르기’만이 아니라 ‘흐르기’이기도 하다는 걸 알겠다. 줄곧 가파르고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두 다리로 할 수 있는 일이 ‘딛기’만이 아니라 ‘흐르기’도 있음을 배워온 셈이다. 때론 어디론가 정처 없이 둥둥 떠다니는 듯해 마음 둘 곳이 없구나 싶기도 하지만 흐르기가 놀기며, 어울리기일 테니 잘 흘러야겠구나. 오늘도 오르막길을 오르고 흐르며 살림이 품어온 작은 수수께끼 하나를 풀었다. 

지난 여름날, 부모님댁에 들렀다가 달려서 장림까지 돌아가는 길에 소설집 『안으며 업힌』에 실린 <초량의 사다리> 배경이 되는 장소를 지나며 한 장 찍었다. 이날은 수정동 옛집을 거쳐 민주공원-남포동-송도-감천항-장림 방향으로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