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숲 2025. 1. 14. 23:12

2024. 12. 24

 

잡지 편집회의를 끝내고 이어지는 뒷자리를 뒤로하고 먼저 나섰다. 정영선 작가님을 모셔다 드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색함을 쫓으려 내어놓는 실없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책 만드는 이야기, 소설 쓰는 이야기,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 답답한 마음을 슬쩍 내비치는 이야기를 술술 잇다보니 광안리에서 북구로 넘어가는 길이었지만 이어서 김해까지, 창원까지도 갈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주거니 받거니 잇던 이야기가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하면서 뚝 그쳐야 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한 달 만에 차에 기름을 넣고 마트에 들러 고등어도 두 마리 사고, 두부랑, 고추, 안 깐 마늘도 한 봉지 샀다. 닭튀김을 내어놓는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걸보곤 속으로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이브군’이라 속삭였다. 오늘 일찍 집으로 돌아왔으니 벼르던 달리기를 하러 나서야겠구나 싶다. 미루고 미루다보니 달린지 한 달이 훌쩍 넘어버렸다. 내일도 마쳐야 하는 일이 잔뜩 쌓여 있기에 겨울 바람을 한움큼 마셔서 몸과 마음을 북돋아야겠구나 싶다. 

천천히 달려야지 마음먹었지만 오랜만에 달려서 그런지, 긴장과 들뜸 사이를 넘나드는 탓에 몸이 앞서 나간다. 몇 주를 꽤나 정신없이 보낸 듯한데, 가만히 돌아보니 즐거운 흔적으로 가득하다. 옅은 웃음 자국만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즐겁고 기뻤던 순간을 찬찬히 떠올려보았다. 기쁨과 즐거움은 웃음처럼, 불꽃처럼 무게가 없어 그 순간만 반짝이고 어느새 날아가버리지. 내 몸, 내 마음 어딘가에 기쁨과 즐거움이 타올랐던 흔적이 있겠구나 싶어 가볍게 땅을 딛고 박차고 나아가며 몸과 마음을 훑었다.

달리는 동안 에어팟으로 음악을 듣다보면 달리기 어플에서 알림도 보내주는데,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1km마다 거리와 속도를 알려주는데 연거푸 놓친다. 음악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딴생각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딴생각’이라는 낱말을 품고 달렸다. 내게 ‘러너스 하이’라는 건 별 게 아니라 바로 이 딴생각을 가리킨다는 걸 오늘에서야 뚜렷하게 알아차렸다. 달리기가 늘 이토록 즐거운 까닭이 딴생각을 마음껏 할 수 있기 때문이란 것도 알겠다. 어디서든 딴생각을 하지 말라고 곧잘 나무라곤 하지만 딴생각이 무얼 가리키는지 되새겨보아야 한다.

≪우리말샘≫엔 “미리 정해진 것에 어긋나는 생각”이라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다른 데로 쓰는 생각”이라 풀이해놓았다. 딴생각을 잘못된 일이라는 눈길로만 바라본다. 딴생각은 ‘다른 생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건 ‘미리 정하지 않은 생각’이고 ‘다른 데로 나아가는 생각’이다. 문학과 예술은 그야말로 ‘딴생각’ 없이는 나타날 수 없다. ‘딴생각’을 쓸 데 없는 짓이라거나 이것저것 여러 생각이 뒤섞이는 거라 여기기 쉽지만 딴생각을 마음껏 하는 경우는 드물다. 뜻하지 않았기에 피식 웃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깊게 품게 되는 딴생각. 달리는 동안 자주 딴생각에 깃들어왔구나 싶다. 그래서 귀에 대고 여러 정보를 알려주는데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거다. 쉼 없이 두 발을 구르며 마을 둘레 여기저기를 온몸으로 누비는 동안 그토록 즐겁고 느긋하게 누릴 수 있었던 까닭이 마음껏 딴생각을 했기 때문이었구나! 

딴생각은 영감처럼 벼락같이 내리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기는 방식으로 깃들지 않는다. 어찌보면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는 편에 가까운데, 그럼에도 계속 딴생각에 깃들다보면 도무지 풀리지 않았던 일도 스르륵 풀려버릴 때가 있고, 늘 해왔던 일이 실은 대단히 뜻 깊고 힘찬 몸짓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되는 때도 있다. 누군가 내게 그래서 무슨 생각을 했냐고 묻는다면 달리 대꾸할 말은 없다. 그저 딴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달리기는 딴생각이 깃드는 발돋움이구나. 그동안 딴생각이 내 몸과 마음을 북돋고 살림에 이바지 했다는 걸 오늘 밤 선물처럼 받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