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다
2025. 5. 28
작업실에 가지 않은 날이면 서재에 앉아 창밖에 쏟아지는 볕을 바라본다. 건너편, 들어갈 수 없는 화목한 집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종알종알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집, 티격태격 작은 부대낌 사이로 웃음이 흐르는 집. 언젠가 방문을 열어두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화목은 집에 다 담기지 않는 웃음소리처럼 바깥으로 흘러넘치곤 하지만 눈길과 손길로 꾸리는 살림은 서로를 감싸기에 내내 집에만 머무르고 싶게 한다. 가만히 떠올려보면 내게도 화목했던 시절이 있었다. 저녁에 고등어조림을 먹던 날들,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주었던 양념통닭, 저녁 대신 만들어주었던 떡볶이, 어린이날에 먹었던 짜장면, 한여름 마당에서 구워 먹었던 삼겹살, 그리고 3교대 근무를 했던 아버지와 함께 올랐던 뒷산 약수터길. 그 길을 오르며 만난 나무와 동물에 대해, 또 이 세상 온갖 것들에 대해 쉼 없이 들려주었던 이야기. 내 몸 구석구석에 부엌에서부터 흐르며 집안 가득했던 음식 냄새가 배어 있다. 가만히 킁킁거리기만 해도 고등어조림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아랫집에서 적어도 두세 번은 재탕한 듯한 김치찌개 냄새가 올라올 때, 맡을 수 있을 뿐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음식 목록이 한 가득이라는 걸 알아차린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동안 힘이 더 차오르는 듯 아이처럼 신나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의 수다가 지금 내 몸에도 흐르고 있음을 느낀다. 지나간 한 때를 이렇게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내게도 열어둔 방문이 있다는 뜻이겠지.
5월 볕이 사위어갈 때쯤 달릴 준비를 했다. 7시가 다 되어 가는데도 볕이 남아 있다. 다대포해수욕장 입구에 들어서니 해가 지는 게 보인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달리다가 ‘늘 해가 지는 쪽으로 달려왔구나’라는 걸 알아차렸다. 붉고 커다란 해가 명지 신도시 어귀 이름 모를 산기슭으로 가라앉는다.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는 사람. 그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오가는 사람. 같은 곳을 맴도는 사람. 그래서일까, 그동안 어딘가에 다다르기 위해 달린다 여겨왔다. 꼭 도착해야 할 곳은 없었지만 달리다보면 그곳에 닿기 위해 더 달려야겠다는 마음이 샘솟곤 했다. 딱히 가고 싶은 곳은 없지만 달리다보면 더 가고 싶어진다. 거기가 어디라도 좋아, 더 가고 싶어. 두 발을 부지런히 내딛으며 다가가고 싶어. 달리는 동안 다다르고 싶다는 마음은 꼭 어딘가에 이르지 않더라도 몸과 마음을 길 위에 마음껏 펼쳐놓게 한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에 다다르고 싶기에 더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지만 나는 이 마음이 갑자기 쏟아지는 코피와 닮아 있다는 걸 안다. 달리는 또 다른 까닭, 그건 지나가기 위해서다.
달리기는 ‘닿기’와 이어지면서 ‘지나가기’와도 이어진다. 닿기에만 힘쓰면 몸이 무거워질 때까지 달려야 하지만 지나갈 때 몸은 늘 가볍다. 마음에 담아두지 않아도 되고, 마음 쓰기를 멈춰도 된다. 모두다 잠깐이면 등 뒤로 멀어질 테니까, 훌훌 털어버리듯 가볍게 지나간다. 내내 마주보지 않아도 괜찮아, 어여쁨이 사라진 내 모습을 그대로 내보여도 좋아, 내 힘으로 지나갈 수 있으니까, 금세 지나칠 테니까. 달릴 땐 머물거나 붙드는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반갑게 맞이하면서도 저쪽으로 훌쩍 지나간다. 지나갈 수 있어서, 지나칠 수 있어서 나는 한껏 너그러워져서 마음으로 인사한다. 안녕, 안녕, 안녕. 만나서 반가워, 하지만 헤어져야 하네, 다음에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