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8
하루 중 거의 유일하게 안심하는 시간은 늦은 밤 홀로 와인을 마실 때다. 기껏해야 한 두 잔이지만 얼마 전 와인이 내 삶에 이미 입회해 있음을 알게 되었던 순간, 나는 실로 오랫만에 안도했다. 기쁨도, 슬픔도 없는 생활을 벼리는 일상 속에서 ‘와인’이 주는 잠깐의 자유와 안락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와인은 아마도 J형과 어울리면서, 그가 베푸는 배려와 환대가 열어준 오솔길을 따라 내 생활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때론 ‘환대’란 말없이 문을 열어두는 일이기도 한터라 편안한 온기의 출처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어떤 환대 앞에서 잠시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나 또한 그런 어리둥절한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쉬움을 내색하지 않고 어떤 식탁에서든 내 자리를 마련하고 잔이 빌 때마다 와인을 따라준 J형을, 와인을 마시며 떠올린다. 와인을 쫓지도, 찾지도 않았지만 와인이 내 생활 속에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 ‘이미 그렇게 되어 있는 일’들이 보이지 않는 ‘환대’와 ‘배려’로부터 맺힌 열매임을 알겠다. 내 발 밑으로 굴어온 열매를 허리 숙여 줍는 일에 조금의 망설임이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김영민) 또한 누군가의 환대와 배려라는 울타리 덕임을 알겠다.
간밤에 나뭇잎에 맺힌 이슬을 부리로 훔치는 작은 새처럼 오늘도 공혜(空慧)의 물을 마신다. 살아 가는 일이 당신의 ‘덕’에 기대지 않고 내 ‘능력’임을 자신하지 않으면서도 내 ‘탓’에 함몰되지 않는 걸음을 일매지게 걷는 일이라는 것 또한 조용히 알겠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 흐르고 있는 ‘환대와 배려’의 물줄기 소리를 듣는 일. 그건 내 앞에 놓여 있는 한 잔의 물에 이어져 있는 물줄기의 경로와 보이지 않는 시간을 헤아려보는 일이며, 누군가가 한번 걸었기에 지금 나의 걸음이 허락되는 오솔길을 걸으며 언젠가, 누군가의 발자국에 내 발을 잠시나마 포개어보는 일일 것이다. 그렇게 한 잔의 물을 마시며 백년의 물줄기 또한 함께 마실 수 있겠는가, 좁고 어두운 오솔길을 백년의 걸음으로 걸어낼 수 있겠는가. 오늘을 고작 오늘로만 사는 것이 인간(성)의 비극이라면 오늘을 ‘종(種)의 시간’으로 살아내는 것은 동물(성)의 비(평)범함일 것이다. 두발로 걷는 인간이 네 발로 달리는 동물을 쫓는 것이 불가능하다 해도 두발(인간) 바깥으로 걸어 나가보려는 걸음만큼은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이 사람이 괴물로 좌초 되지 않고 가까스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동물 곁에 머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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