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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꿈-기록(3) 0.1%의 희망

by 종업원 2018. 9. 19.

2018. 9. 12


점심을 지어 먹고 잠깐 선잠이 들었는데, 간만에 꿈을 꾸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링 위에서 잽(jab)을 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꿈이었다. 늦봄부터 나가기 시작한 체육관에서 운동을 가르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알게 되었다. 기본 원리를 숙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자신의 몸으로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몸을 움직여 반복연습하다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게 있다. 쉽게 익힐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아주 느리게 조금씩 나아진다는 것을. 5개월 동안 중요한 일이 아니고선 좀처럼 체육관 나가는 것을 빠지지 않았다. 운동을 하고 나면 1kg이 빠졌다. 제대로된 잽(jab)을 넣기 위해 매일매일 숨이 턱 밑까지 찬다. 아무것도 아닌 잽(jab)을 위해 허공에 손을 뻗다보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빠트리지 않고 체육관에 나가는 이유는 0.1%정도 나아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미미한 0.1%가, 전에 없던 0.1%가 내 몸속에 천천히 쌓이고 있다. 


다시 강의를 시작했다. 전부터 맡아온 강의지만 학기초는 늘 긴장되고 힘들다. job에 대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jab으로 변형되어 꿈으로 상영된 것일 게다.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허공에 잽을 뻗는 것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구경꾼들은 심드렁한 표정이지만 몇몇은 어설프게나마 손을 뻗는 시늉을 한다. 상대가 없는 텅 빈 링 위에서 쉐도우 복싱을 하는 선수처럼, 마치 실전인 듯 비장한 표정으로 잽을 뻗는다. 0.1%의 희망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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