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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매일매일 부서지면서 배우는 것

by 종업원 2018. 10. 12.

2018. 10. 11



저녁 7시에서 8시가 되면 하던 일을 정리해야 한다. 이제는 7시나 8시에 맞춰서 일을 진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체육관에 가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군대 전역 이후로 제대로된 운동을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심지어 나는 군대에서도 족구나 축구를 한적이 없다) 지난 4월부터 거의 하루도 걸르지 않고 체육관을 나가고 있다. 뭔가 그럴 듯한 결심이 서서라기보단 어떤 끝을 향해 나아간다는 느낌으로, 출처를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조금은 강박적으로 체육관에 나가고 있다. 박사수료생이라는 (민망하고) 불안정한 신분과 1인 가족 생활의 적빈함이 누적된 탓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나는 별안간 꽤 과격한 운동을 시작했고 6개월 간 지속하고 있다.


십 수년만에 몸을 쓰다보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몸을 쓰면 쓸수록 몸에 더 집중을 하게 되고 때로는 강박적으로 작은 자극과 통증에 붙들리기도 한다. ‘운동선수’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고 느낀 것은 엘리트 선수일수록 ‘부상을 안고’ 경기에 임한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을정도로 매일 온몸이 쑤신다. 그런데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하면 아픈 곳이 서서히 사라진다. 체육관에선 최고령(?)에 가깝지만 누구보다도 많은 스파링을 한 탓인지 크고 작은 부상이 늘 있었는데, 2주전부터 왼쪽으로 목을 돌리면 왼팔까지 저릿한 증상이 있어 관장님에게 당분간 스파링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해둔 상태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목디스크 초기 증상이라고 한다)


어제부턴 홀로 운동장을 뛰고 있다. 시합에 나가는 선수가 있을 때 3분 3라운드 형식으로 운동장을 뛰곤 했는데, 모두가 극도로 싫어하는 그 시간이 나는 이상하게 좋았다. 처음 운동장을 뛰고 (당연하게도) 다음 날 무릎이 아파서 일주일정도 운동을 하지 못했는데, 뒷꽁무니도 쫓아가지 못했던 때와 달리 숨을 헐떡이면서도 리드하는 선수와 비슷한 속도로 3라운드 러닝을 마쳤을 때의 성취감 때문이 아니라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턱밑까지 차올라 금새 포기할 것 같은 순간을 내내 버텨내는 느낌이 좋았다고 할까. 스파링을 할 때 숙련된 선수의 펀치를 맞으면 머리가 띵할 정도의 충격을 받지만 물러서기보다 그럴수록 더 다가서는 이유도 그와 비슷한 것일까. 스파링을 시작하기 전 언제나 상대의 펀치가 두려워 심장이 뛰지만 막상 한방 맞으면 평정심을 가지게 되어 몇 대라도 아무렇지 않게 맞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언젠가부터 매일매일 건강해지고 있다기보단 몸이 부서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병약한 책상도령 특유의 예민함도 한몫하는 것일테지만. 


거의 매일 신체의 한계를 체감하다보니 오늘이 체육관에서 하는 마지막 운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운동장을 달리다보면 오직 호흡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진정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속도를 늦추거나 멈춰야 한다는 신체가 보내는 압도적인 신호를 이겨낼만한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무작정 계속 달려보고 있다. 몸의 한계를 체감하면서 어떤 무용함에 대해 희미하게 다가서게 되는 것도 느낀다. 홀로 운동장을 달리고 체육관에서 ‘완고한 몸’을 부수어가면서 그간 알지 못했던 기묘한 이끌림의 힘과 만나게 된다. 가쁜 숨을 참으며 달려야 하는 이유도 모른 체, 무용함에 휩싸여 달리는 동안 내가 여기서 무언가를 배워야 하며 배울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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