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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야! 2023. 11. 11 오랜만에 뵌 어머니 얼굴이 희고 밝아서 안심했다. 낮에 최종규 선생님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가을햇살 표정이 밝다고, 그래서 나도 따라 밝아지는 것 같다 전했는데 그 햇살이 어머니에게도 닿았구나, 어머니도 오늘 가을햇살을 머금으셨구나 싶었다.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걸음도 좋아보이고 목소리에도 힘이 실려 있어 나도 덩달아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며 이제 남들과 똑같아 보인다고 해주셨다. 내게 내려앉은 가을햇살을 보셨나보다. 앉아서는 10분도 이야기하기 어려우셔서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 아래에 난 작은 종기부터 이웃을 통해서 산 햅쌀이 참 좋더라는 이야기를 거쳐 아버지가 이달 용돈을 지나치게 많이 썼다는 푸념과 고.. 2023. 11. 14.
살림 씨앗(1)_우리는 말숲으로 간다 부산에 터한 출판사 과 전남 고흥에 터한 우리말 사전을 짓는 숲노래(최종규)가 함께 '살림사전' 쓰는 자리를 엽니다.매달 부산 중앙동 '곳간'에 둘러앉아 각자가 돌봐오거나 돌보고 싶은 살림 낱말을 꺼내서 풀고 손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펼쳐볼 참입니다. ① 각자가 낱말을 고르고(영어, 한자, 우리말 가리지 않고) ② 고른 낱말을 우리 나름대로 풀이해보고 ③ 국립국어원 사전과 숲노래(최종규) 사전과 비교해보고 ④ 함께 손질합니다. 🌳 함께 꾸릴 살림사전은 아래와 같은 길을 트며 나아갈 참입니다. 1. 한 사람이 엮는 낱말책을 여러 사람 손길로 읽고 짓습니다. 2. 함께 나눌 낱말책을 우리 손빛으로 스스로 짓고 나눕니다. 3. 우리는 누구나 글님·그림님·별님인 하루를 폅니다. ⏤우리는 말숲.. 2023. 11. 7.
오늘 꼭 건네야 하는 이야기 어떻게 이 많은 가족이 변화하는 과정을 세세하게 감지하고 가늠하며 이야기로 펼쳐낼 수 있었을까. 자신이 사는 곳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그 취급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스미는지, 마치 온도계처럼 ‘세상의 기온’에 반응할 수 있는 것일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세라 스마시의 를 읽어내려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곧장 이런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나 냉랭한 것일까. 어째서 여기-지금-우리 이야기를 펼쳐내지 않고 있는걸까. 무엇이 이야기하는 걸 가로 막고 있는 것일까. 는 “날아서 (비행기를 타고) 지나가는 땅”으로 취급된 지역에서 대물림되는 가난의 악순환을 끊어내야겠다는 의지와,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는 이곳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든 이야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가 팽팽.. 2023. 11. 7.
함께 부를래요? 2023. 11. 3 작년 5월, 1인 출판사 에서 첫 번째 책을 냈다. 언젠가는 출판사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그게 2022년일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언덕을 빠르게 내려가다가 속도를 이기지 못해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책을 낸 것 같다. 힘에 부쳤지만 열심히 홍보하고 여러 번의 북토크를 꾸리는 동안 꽤나 즐거웠다. 누군가가 설 수 있고, 그때문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무대'를 꾸리는 일은 늘 즐겁다. 곧 두 번째 책이 출간된다. 한 정부 기관지에 3년간 연재한 글뭉치를 넘겨받아 여러 번 읽고 손보고 매만지는 동안 첫 인상과 달리(!) 책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정리해 올 봄, 지역 출판지원금 사업에 내었고 선정이 되었다. 봄부터 여름 사이에 글 전체를 다시 읽.. 2023. 11. 4.
덧없음과 걷돌 수 있는 힘 사이를 오가며⏤오솔길 이야기(4) 2023. 10. 19(10. 30) 상처 입은 초식동물처럼 몇년을 웅크리고 지내던 나날 속에서 오솔길을 만났다. 찾아냈다기보다는 우연히 주운 낱말이라 여겨왔다. 홀로 뭔가를 꾸려보려 애쓰는 동안 만난 낱말이라 애틋한 마음으로 매만지며 간직해왔다. 사람들을 피해 동네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만나게 된 길이 모짝 길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버려진 것처럼 보였는데, 돌아나오지 않고 기어이 길 아닌 곳을 향해 더 걸어들어갔기에 걷고 있는 이 길을 ‘오솔길’이라 여길 수 있게 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오솔길이라는 낱말을 떠올릴 때면 스산하고 외롭지만 고즈넉한 향이 은은하게 나오는 것 같아 쓸쓸함과도 그럭저럭 어깨동무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만났던 이들, 특히 모임을 열면 드문드문 찾아오던 이들은 대체.. 2023. 10. 31.
목소리에 이끌려, 뚜벅뚜벅 2023. 10. 25 池間由布子 Yuko Ikema - とんかつ 池間由布子 Yuko Ikema - Halo (光輪) [2015] 어떤 목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이 지나온 시간이 보일 때가 있다. 그 목소리가 끊기지 않고 내내 이어지길 바라며 잠자코 듣다보면 이윽고 여기에 이르게 되었구나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는 모두가 그런 목소리를 지니고 있다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알지 못한 채 무언가를 말로 전달하기 위해 조용히 외칠 뿐이다. 어떤 글에선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기에 있지만 저곳으로, 저곳에 있지만 여기로. 멀어지고 다가오는 것들. 흐르는 것은 마음이다.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글엔 마음이 흐른다. 오래전 어느날 내 목소리를 찾아야겠다 마음 먹은 이후로 지금까지 나.. 2023. 1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