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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溺死)해버린 익명(匿命)을 구하라 우리는 매일 매일 ‘자기소개서’를 쓴다. 명백하게 허위가 아닌 범위 내에서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과장해서 드러내고 그것이 현실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단점을 ‘고백’한 후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견지한 어조로 ‘자기소개서’를 마무리 짓는다. 이는 비단 ‘취직’을 위해 작성하는 특별한 문건에 국한되지 않는데, 가령 미니홈피에 남기는 무수한 기록들―내가 간 곳, 내가 만난 사람, 내가 먹은 것, 내가 산 것, 내가 입은 것, 시시각각 변하는 내 감정을 그럴 듯한 것으로 치장하는 데 동원되는 여기저기서 절취한 문장들은―모두는 ‘자기소개서’를 닮아 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웹(web) 상에 투기(投棄)하는 데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지만 그 투기(投機/鬪技)는 이익/승리를 획득하는 .. 2011. 1. 23.
저기요 저기요 :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요긴한 말. 우리는 아직 이 말보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호명 방식을 가지지 못했다. 하여, 타인을 부르는 보다 요긴한 말을 새롭게 캐내거나 너무 자주 써서 한없이 닳어버린 '저기요'가 가진 의미의 심연을 발굴해낼 필요가 있다. 저기, 누군가가 있다. 가닿고 싶지만, 필시 가닿지 못하고 그 앞에서 바스러지고야 '말'. 저기, 누군가가 있기에, 속절없이 부른다. 그것은 첫 말, 다음 말을 기약할 수 없는, 오직 부름으로써 제 몫을 다해버리기에 '저기요'를 통해서는 결코 다음 말을 꿰낼 수 없다. 그것을 알지만 '저기요'는 얼마나 간곡한 부름인가. 저기, 누군가가 있다는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 선뜻 태어나는, 맹렬히 달려가는, 말.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기에, 오직 부를 .. 2011. 1. 23.
다시 돌아올,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 구절, 단어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시간을 흘려보낸다. 밑줄을 긋거나 그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순간을 음각해보지만, 나는 분명히 이 대목을, 이 구절을, 이 순간을 흔적도 없이 잊고 말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이 자리로,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결코 활자들을 붙들어 들 수 없다. 아니 활자가 내게로 오는 순간,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되어, 소리의 육체(육성)가 되는 순간이기에 이 순간은, 목소리가 머무는 지금-여기-우리의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내가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잊을 줄 알면서 이 순간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이 자리로 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2010. 4. 20.
건반을 치듯, 아래로 아래로 계단을 내려갈 때의 경쾌한 발걸음, 발놀림, 발연주.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빠르게, 아니 리드미컬하게 계단을 내려가다보면 그 소리에 발맞추어 도 레 꽃 솔 2010. 4. 16.
긴머리 노란 청년 몇 권의 책이 배달되어 왔다. 단 한순간도 기다린 적이 없고, 온다는 사실 조차 잊고 있었던 것들. 갑작스레 떨어진 체감 온도에 '꽃들은 어쩌나'는 생각을 뒤늦게 떠올린 것처럼, 오지 않으면 언젠가는 기억하겠지만 것이지만, 뒤늦음이라는 회한에 휩쓸려버릴 그런 기다림들, 단 한번도 기다리지 않았지만 기꺼이 찾아오는 그런 것들. 책을 배달하는 분이 바뀌었는데, 아마도 알라딘에서 택배회사를 바꾸었던지(배송일이 늦다는 불편사항을 알라딘에 접수시킨 적이 있다), 택배 기사님이 교체된 모양이다. 모든 기사님들이 마치 인사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한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무뚝뚝하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물건만 전해주고 가던 그 택배 기사님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새로운.. 2010. 4. 14.
바보야! 문제는 자백이 아니야 이별을 통보한 연인에게 이별의 이유를 묻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그 이유를 알아야만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그것은 이별을 부정하기 위한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다. 이별의 이유는 특정한 사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맺고 그것을 이어온 시간들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에게 그 이유를 묻지 말고 연애의 시간을 다시 떠올려보아야 한다. 그곳에 헤어짐의 이유가 너무나도 선명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이다. 범인에게 자백을 종용하는 검찰과 언론의 태도는 이별의 이유를 맹목적으로 묻는, ‘여전히’ 아둔한 연인과 닮아 있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진술하게 하는 자백은 결코 범죄의 전말을 설명해내지 못한다. 범죄를 용의자의 자백을 통해 해결하려는 태도.. 2010.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