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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

7월 생활글(1-3/계속) 2019. 7. 16[젓가락의 내러티브] 서울에서 친구가 왔다. 마침 와인과 맥주가 넉넉해 따로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술안주를 만들었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먹은 음식의 목록. 순대볶음, 키위 두 개, 사과 한 알, 배 하나, 마늘빵, 라면 한 그릇, 핸드드립 커피 두 잔. 그리고 와인 세 병과 맥주 두 캔. 도착하자마자 세수는 하지 않고 이빨부터 닦는 건 여전하다. 사귄지 20년이 넘었지만 만날 때마다 생각지 못한 것들을 알아간다. 한 때는 무심하고 거친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지만 이제는 굳이 드러내지 않는 세심함과 섬세함이 더 많이 감지된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마치 인덱스를 붙여가는 듯 차근차근 말을 풀어놓는 방식에 청량감을 느낀다. 관계 속에서 .. 2019. 7. 16.
살림살이의 글쓰기 냉장고에선 음식이 썩어간다. 다행이다. 음식 쓰레기를 모아둔 통을 이틀만 잊어도 그곳에 구더기가 꼬인다. 다행이다. 아무리 표백하려고 해도, 감추려 해도 기어코 드러나는 것이 생활의 이치다. 생활 속에 썩어가는 것이 보인다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표식에 가깝다. 아직 썩지 않았을 뿐인데 우리는 냉장고에 넣어두면 모든 것이 싱싱하게 유지된다고 쉽게 믿어버린다. 그 손쉬운 믿음을 심문하는 것이 냉장고에서 썩어가는 음식이다. 신경 쓰지 않으면, 돌보지 않으면 분명히 썩는다는 것을 ‘냉장고’ 안에서라도 배울 수 있다면 다행이지 않은가. 음식물 쓰레기에 꼬인 구더기는 무너진 생활의 증표가 아니라 무언가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생활이 보내는 긴급한 신호다.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녹을 때 그곳은 진창이 된다. .. 2019.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