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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지기52

살림 씨앗(3)_바람, 늘, 어린이 ㅎ : 제가 요즘에 곳간에서 나온 을 읽고 그거 때문에 ‘여행’에 심취해 있거든요. (곳간지기 : 오~~!) 뭔가 말만 나오면 여행을 떠올리게 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바람이 ‘여행하는 숨결’이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래서 이렇게 풀어봤어요. “다대포에 4월이 오면 사스레피가 내쉰 숨결과 마른 파래와 조개들이 내쉰 숨결이 한 데 어울려 봄맞이 하러 갑니다.” 제가 사는 다대포에 사스레피나무 군락이 있어요. 3월이나 4월이 되면 사스레피나무에서 작은 꽃이 피는데요, 향기가 엄청나답니다. 그래서 사스레피나무 군락과 제가 사는 집은 꽤 떨어져 있지만 바람이 불면 저희 동네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벌써 냄새가 다르죠. 특히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 불잖아요. 그러면 냄새를 맡게되는데 여러가지 향이 난답.. 2024. 1. 22.
살림 씨앗(1)_우리는 말숲으로 간다 부산에 터한 출판사 과 전남 고흥에 터한 우리말 사전을 짓는 숲노래(최종규)가 함께 '살림사전' 쓰는 자리를 엽니다.매달 부산 중앙동 '곳간'에 둘러앉아 각자가 돌봐오거나 돌보고 싶은 살림 낱말을 꺼내서 풀고 손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펼쳐볼 참입니다. ① 각자가 낱말을 고르고(영어, 한자, 우리말 가리지 않고) ② 고른 낱말을 우리 나름대로 풀이해보고 ③ 국립국어원 사전과 숲노래(최종규) 사전과 비교해보고 ④ 함께 손질합니다. 🌳 함께 꾸릴 살림사전은 아래와 같은 길을 트며 나아갈 참입니다. 1. 한 사람이 엮는 낱말책을 여러 사람 손길로 읽고 짓습니다. 2. 함께 나눌 낱말책을 우리 손빛으로 스스로 짓고 나눕니다. 3. 우리는 누구나 글님·그림님·별님인 하루를 폅니다. ⏤우리는 말숲.. 2023. 11. 7.
Take this Waltz—아픈 세상에서, 함께 춤을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 1934~2016)의 라이브 명반 (2009)의 수록곡 ‘Take this Waltz’를 특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레너드가 특유의 진중하고 느긋한 목소리로 무대 위에서 함께 연주하고 있는 멤버들을 소개하는 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DVD로도 발매가 되었기에 그 실황 공연도 관람한 바 있는데, 그는 중절모를 벗어 한손에 쥐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멤버 옆으로 다가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눈을 맞추고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한다. 그가 샤론 로빈슨(Sharon Robinson)의 곁으로 다가가 그이를 소개할 때 우리는 샤론이 단순히 백 보컬이 아니라 레너드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앨범의 첫 트랙인 ‘Dance me to the end.. 2022. 12. 19.
회복이라는 알 “당신이 믿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어떤 행동을 한다는 것, 이는 진정성의 부재라기보다는 진정성의 증거였다.” ―레슬리 제이미슨, 『리커버링』 1974년 11월 말,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초크는 젊은 영화인들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평론가 로테 아이스너가 위중하다는 전화를 받는다. ‘아직은 그녀의 죽음을 허락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독일 뮌헨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걸어가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걸어가면 그녀가 살아 있을 거라는 확신을 품고 떠난 무모해 보이는 여행기, 『얼음 속을 걷다』(베르너 헤어초크, 안상원 옮김, 밤의책, 2021)엔 혹독한 추위와 질척거리고 험난한 시골길, 어둡고 늙은 지방 사람들의 표정만이 이어진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기록했던 탓에 걷기로 결심한 것을 후회하거나 자주 .. 2022. 3. 24.
이상한(queer) 생태⏤퀴어, 자립, 독립 1 2013년 8월의 어느 저녁, 부산 남구 대연동 재개발지구에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백무산의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창비, 2012)에서 몇 편의 시를 추려 그날의 참석자들에게 선물로 건넸고 시를 건네 받은 이들은 오래된 선풍기 곁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천천히 낭독했다. 시 낭독과 함께 우리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시에 관한 것은 아니었고 조금은 엉뚱하고 쓸모를 찾을 수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백수들의 유쾌한 실험실’이라 자신을 명명했던 이상하고 특이했던 모임, 은 2013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도시재개발로 인해 퇴거 통보를 받았지만 이를 ‘재(능)계발’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변주해 하고 싶은 작당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한달간 주변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그 장소를 분양했다. 그때 생.. 2020. 12. 10.
입말과 입맛-권여선론 먹는다는 것(1) 권여선의 소설은 불안정한 삶의 조건과 세상에 대한 불신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리는 인물들로 가득하다.[각주:1] 손쓸 수 없는 운명에 붙들린 그들의 집요하고 지독한 응시엔 지난 과오를 회억하는 성찰의 기미가 얹혀 있지만 언제나 그보다 도드라지는 건 자기혐오나 출처를 알기 어려운 타인을 향한 과잉된 증오심이다. 기억을 헤집으며 곳곳에서 증오의 단서들을 쌓아올리지만 거의 모든 인물들이 곧 증발해버릴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이는 것은 좀처럼 식지 않는 뜨거운 정념 때문일 것이다. 초기부터 줄곧 그런 작품을 써온 권여선의 소설세계에서 『토우의 집』은 다소 이례적인 작품처럼 느껴진다. 삼악산 남쪽면을 복개해 산복도로를 만들면서 생겨난 동네인 삼악동이 삼벌레고개로 불리는 이력을 차근차근 안내하는 것으로.. 2020. 7. 19.
세상에 보내는 한 통의 편지 보내야 할 중요한 편지를 쓰지 못한 채 겨울을 맞이합니다. 서랍 안의 장갑이 손의 증거인 것처럼 보내야할 편지가 있다는 건 곁에 누군가가 있다는 증표라고 해도 좋을까요. 쓰지 못했고 그래서 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매일매일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편지를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당신에게 도착할진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제게 먼저 편지를 보내주었기에 오늘도 저는 당신에게 답장을 쓸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편지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편엽서처럼 멀리서 도착하는 짧고도 반가운 메시지가 아니라 언제 보낼지 기약할 수 없지만 노트에 쟁여가는 편지말입니다. 세상에 보내는.. 2019. 12. 8.
바스러져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 구조 요청에 응답하는 것 : 대피소의 문학(1) 1. 필사의 글쓰기 이토록 오랫동안 ‘참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던 시대가 있었던가. 용산 참사 이후 ‘조간朝刊은 부음訃音 같다’(이영광, 「유령 3」)던 한 시인의 말이 몇 년 사이에 ‘조간은 부음이다’라는 절망으로 좌초되어버린 듯하다. 아침에 누군가의 부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부음 없이는 아침이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는 아침은 누군가의 죽음에 빚지고 있는 것이리라. 무력(無力)해지기 싫어서 무력(武力)을 외면하고 무력감(無力感)과 대면하지 않으려 피해다니다보니 겨우 ‘잊지 않겠습니다’정도의 말만을 읊조릴 수 있을 뿐이다. 누군가에겐 필사적이고 간절한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무기력한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잦다. 그건 ‘잊지 않겠다’는 말이 무기력해서가 아니라 그 말.. 2017. 12. 9.
<메아리 : 다른 곳에서, 다른 목소리로> Tengger 2집 발매 투어 in busan Tengger 2집 발매 투어 in busan '곳간' 의 오랜 친구인 Tengger(itta X maruqido)의 2집 발매 기념 전국 투어 중 부산 공연을 곳간에서 기획했습니다. 송도 해변이 보이는 작은 2층 집에서 고요한 자연과 거대한 도시를 오가며 쌓은 사운드를 풀어놓습니다. TENGGER의 모든 공연처럼 현장에서 관객과 호흡하며 즉흥적으로 사운드를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이번 공연은 몇 년전부터 일본 시코쿠에 순례자들을 위한 공간 및 작업실을 만들며 채집한 사운드와 영상을 전시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의 현장 takeoutdrawing에서 작업한 음악과 곧 발표될 2집 수록곡들로 채워집니다. 엠비언트 사운드를 기반으로 많은 소리들을 겹겹이 쌓아가는 TENGGER의 음악 속에서 멀리서 도착하는 메아리를.. 2016. 6. 27.
우리의 앎은 돌이킬 수 없이 연루되어 있다—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 불에 휩싸인 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기 전, 전태일은 글을 썼다. 그가 남긴 대학노트 7권엔 일기와 어린 시절을 회상한 수기, 친구들에게 쓴 편지, 미완의 소설, 노동청에 보낼 진정서, 사업 계획서,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근무 실태 조사를 위한 설문지 등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보이거나 글로써 어떤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없이 그는 다만 썼고, 읽었다. 읽은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썼으며 그렇게 알게 된 것을 평화시장의 동료 노동자들과 동생에게 열띠게 설명하고 가끔은 잠자고 있던 어머니를 깨워 다급하게 알렸다. 전태일의 분신이 한국 노동운동사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허락되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 2016. 3.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