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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144

낯선 고향 쪽으로⏤코로만 숨 쉬기(5) 2023. 12. 8  못해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달려야지 싶지만 자꾸 미뤄지고, 마음을 크게 먹어야 나설 수 있는 걸 보면 달리기를 살림이라 꺼내놓을 수 없겠구나 싶기도 하다. 애써 모른척, 마치 어제 본 동무를 향해 인사를 건네는냥 아무렇지 않게 나가야겠다 마음 먹고 달릴 채비를 갖춘다. 어플을 확인해보니 달린지 20일이 넘었기에 오늘은 더 천천히 달려야겠다 마음 먹고 나섰다. 거리나 속도를 가늠하지 않고 코로만 숨 쉬며 비에 흠뻑 젖는 것처럼 밤공기에 몸을 내맡기며 나아간다. 새삼 나-아-가-다란 낱말을 곱씹게 된다. 달리기를 몸과 마음을 펼치는 자리라 여겨왔기에 '펼치다'란 낱말에 대해선 나름으로 풀이를 해보고 짧게나마 적어보기도 했다. 달리는 동안 드문드문 '나아가다'란 낱말을 떠올리게 되는 때.. 2023. 12. 24.
달리기 살림⏤코로만 숨 쉬기(4) 2023. 11. 16 작업실이 춥고 몸도 좋지 않아 일찍 퇴근하는 길에 ‘카파드래곤’에 들러 원두를 샀다. 집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기에, 혹여라도 커피가 없어 작업이 중단될까 오늘도 괜한 염려를 하며. 지난번에 구매했던 원두 두 종류에 대한 후기를 전하며 신맛이 나는 원두를 내릴 때 부딪친 문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아마도 사장님 또한 퇴근을 준비하는 듯했지만 이내 신맛 나는 원두를 갈아서 커피 한잔을 내려주신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동안 그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이야기를 건넨다. 자신은 20g이 한잔 양인데 이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원두가 부풀어오르는 이유와 어떤 방식으로 내리는 게 좋은지, 신맛이 나는 원두와 강하게 볶은 원두를 내릴 때 물온도는 어느정도가 적당한지, 정해놓은.. 2023. 11. 17.
새야! 2023. 11. 11 오랜만에 뵌 어머니 얼굴이 희고 밝아서 안심했다. 낮에 최종규 선생님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가을햇살 표정이 밝다고, 그래서 나도 따라 밝아지는 것 같다 전했는데 그 햇살이 어머니에게도 닿았구나, 어머니도 오늘 가을햇살을 머금으셨구나 싶었다.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걸음도 좋아보이고 목소리에도 힘이 실려 있어 나도 덩달아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며 이제 남들과 똑같아 보인다고 해주셨다. 내게 내려앉은 가을햇살을 보셨나보다. 앉아서는 10분도 이야기하기 어려우셔서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 아래에 난 작은 종기부터 이웃을 통해서 산 햅쌀이 참 좋더라는 이야기를 거쳐 아버지가 이달 용돈을 지나치게 많이 썼다는 푸념과 고.. 2023. 11. 14.
함께 부를래요? 2023. 11. 3 작년 5월, 1인 출판사 에서 첫 번째 책을 냈다. 언젠가는 출판사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그게 2022년일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언덕을 빠르게 내려가다가 속도를 이기지 못해 굴러 떨어지는 것처럼 책을 낸 것 같다. 힘에 부쳤지만 열심히 홍보하고 여러 번의 북토크를 꾸리는 동안 꽤나 즐거웠다. 누군가가 설 수 있고, 그때문에 사람이 모일 수 있는 '무대'를 꾸리는 일은 늘 즐겁다. 곧 두 번째 책이 출간된다. 한 정부 기관지에 3년간 연재한 글뭉치를 넘겨받아 여러 번 읽고 손보고 매만지는 동안 첫 인상과 달리(!) 책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고를 정리해 올 봄, 지역 출판지원금 사업에 내었고 선정이 되었다. 봄부터 여름 사이에 글 전체를 다시 읽.. 2023. 11. 4.
빈 채로 좋아하다 2023. 10. 21 작업실에서 서성이다가 마침내 이곳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알아차린다.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안달이나서 곧장 불안해지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냇물처럼, 따뜻한 봄볕이나 가을날 부는 바람처럼 느긋하게 내려앉는 좋아함을 느끼며 조금 더 서성였다. '좋아한다'는 말은 내게 금기어에 가까운데, 때때로 사람들과 어울릴 때 나도 모르게 그 마음을 내비치는 경우도 있지만 깊게 품으려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이 상대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만큼이나 좋아하는 (내) 마음에 깊이 빠지기 쉽기 때문에 단박에 좋다 여기는 것은 거듭 의심하거나 본능적으로 그 앞에서 뒷걸음질을 치곤 했다. 서서히 이끌리는 것에 대해선 일부러 흐릿하게 하거나 곁눈질로만 보려 애썼다. 충분히 좋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좋아하는 .. 2023. 10. 23.
모임이 쓰다 2023. 7. 2 1. 화명동 '무사이'에서 이미상 소설가가 쓴 『이중 작가 초롱』(문학동네, 2022)을 함께 읽었다. 여러가지 의미로 흥분과 긴장을 가득 머금고 읽었는데,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잘 풀어주어 모임을 하는 동안에서야 마음껏 소설집에 빠져들 수 있었다.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재미나고 통렬하게, 무엇보다 생생하고 정확하게 다루면서도 기록되지 않고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게 좋았다. #문단_내_성폭력 이후 트위터를 비롯한 여러 피드에서 흐르고 있던 목소리들, 촘촘하게 따져묻고 집요하게 추적하다가 어느 사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목소리들을 떠올리면서 읽어내야 했기에 한달음에 읽진 못했지만 신나고 즐겁게 읽었다는 이들이 내어놓은 이야기에 기대어 소설집 곳곳에 슬픔뿐만 .. 2023. 7. 2.
질 자신_도둑러닝(5) 2023. 5. 2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 이세돌의 '밈'으로 알려진 이 말을 달리기에 빗대어 누군가에게 했던 적이 있다. 1km를 5분대로 뛸 수 '없는' 강박과 다급함을 토로한 것이었지만 속도와 기록에 대한 즐거운 비명에 가까운 너스레이기도 했다. 장림에서 다대포를 거쳐 장림 포구를 돌아 장림 시장 둘레를 달리면 10km가 조금 넘었다. 일주일이나 10일에 한 번씩 달리며, '평생 달리면서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했던 순간도 있었다. 한창 집중하고 있던 복싱을 더 잘 하기 위해서, 링위에서 지치지 않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였지만 '먼 거리를 온힘을 다해 달려서 다다른다'는 단순함과 명료함이 좋았다. 달리는 동안 거의 어김없이 한두 가지 생각을 떠올리거나 품게 되는 것 또한 좋았다. 달리는 동안 .. 2023. 5. 4.
4월 일기 2023. 4. 17 망한 사람으로부터 배움_비온후책방 강연을 마치고 최종규 작가님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늘 그렇듯 경이로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칫솔질 하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신 것이 유독 선명하게 남았다. 이틀날부터 자연스레 최종규 작가님이 알려준 방식으로 칫솔질을 하며 최종규 작가님을 생각했다. 작가님 치아 상태는 좋아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칫솔질 이야기에 더 믿음이 갔다. 그저 망하기만 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드물게, 망하면서 배울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망한 이야기를 ‘고백’하지만 어떤 이는 망하면서 알게 된 것을 슬기롭게 건넨다. 망한 세상으로부터 배울 게 있고 망한 생활 속에서도 캐낼 것이 있다. 슬기롭게 망할 수야 없겠지만 망한 뒤에 한줌 정도에.. 2023. 4. 27.
만큼과 까지(계속) 2023. 4. 19.
꿈이라는 비평 2023. 1. 22 1 누군가의 꿈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꿨다. 그이의 꿈 속에서 노닐다 나온 뒤 나는 사람들을 모아 꿈 속에서 내가 본 것들을 이야기 했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꿈이 말한 것을 알리기 위해 사람들을 모은 것이었다. 꿈을 꿨다기보단 꿈이 나를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꿈이 내게 말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 꾸었던 꿈을 생각하며 급히 적었다. 어쩌면 비평은 누군가의 꿈에 초대 받은 이가 쓰는 글이라고. 누군가의 꿈에 (초대 받아)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내가 꾸는 꿈이라 생각되지만 누군가의 꿈에서만 꿀 수 있는 꿈이라는 게 있다. 나는 그 꿈 속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마음껏 느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꿈은 내가 꾸는 꿈이 아니다. .. 2023.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