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 춤
2025. 3. 1
늦은 첫끼 탓인지 저녁 무렵 까무룩 잠이 들었다. 꿈을 꾸는 날이 거의 없어 깊게 잠드는 편이라 믿고 있지만 5시간 정도면 잠에서 깨어나니 늘 잠이 부족하다. 그래서 잠이 오면 마다하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모자란 잠을 채워야겠다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흐릿하게 빗소리가 들려 창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10시를 지나고 있기에 두어 시간 잔 셈인데, 옆동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한 안개를 바라보다가 알아차렸다. 봄이다. 문밖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해 이끌리듯 홀린 듯 달릴 채비를 갖춘다.
안개로 가득한 다대포 바닷가를 달린다. 습도가 높고 날이 많이 따뜻해진 탓인지, 어쩌면 저녁을 거른 탓인지 다른 날과는 다르게 땀이 찬다. 이럴 때일수록 더 천천히 달려야겠다 싶어 발걸음을 조금 늦추니 안개와 발맞추어 달리는 느낌이다. 요즘 눈이 점점 나빠지고 있어 가까운 건 잘 보이지만 먼 것은 뿌옇게 보였는데, 오늘은 안개 때문에 둘레가 온통 뿌연 탓에 먼 것도 가까운 것도 매한가지로 뚜렷하다.
오늘은 ‘부르다’란 낱말을 머금고 달렸다. 안개가 나를 불러서 나왔기 때문이다. 지위나 나이를 가리지 않고 늘 부름에 이끌렸고 잘 답하려고 애쓴 탓에 그 무엇도 제대로 부르지 못했구나 싶었는데, 새삼 ‘부르다’라는 움직씨가 품은 뜻이 여러 갈래라는 걸 알아차린다. 기도는 조용히 신을 부르는 일인데, 그건 스스로를 낮추며 신에게 다가가려는 몸짓이기도 하다. 노래는 마음을 목소리에 담아 가락을 읖는 일이면서 동시에 가락에 목소리(마음)를 앉히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나를 부르기에 응답했다 여겼는데, 그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부르는구나 싶다. 부르고 응답한다는 건 서로를 알아본 이들이 맞닿으려 이쪽과 저쪽에서 움직이는 걸 가리키는 말이구나. 부름은 이쪽으로 오라는 말이면서 그쪽으로 가겠다는 말이기도 하구나. 그러니 오늘 이 밤마실은 안개에 이끌려 나온 발걸음이면서 안개에 다가려는 발돋음인 셈이다.
부르고 싶다. 어떤 이름을, 어떤 노래를, 어떤 낱말을. 달리기는 몸으로 부르며 어딘가에 닿고자 하는 일이다. 입을 다물고 코로만 숨쉬며 달리지만 온몸으로 부르며 나아가는 몸짓이다. 달리기가 이토록 벅차고 기쁜 까닭은 온몸으로 부르는 일이기 때문이구나. 부르는 춤이구나, 달리기는. 춤을 추며 안개 속을 누비며 나아간다. 춤추며 다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