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트러지다1 불이 켜져도, 불이 꺼져도―<흐트러지다 乱れる>(1964) 2017. 10. 10 나루세 미키오(成瀬巳喜男)의 (1964)에서 선명하게 남아 있는 두 장면. 영화 초반, 카메라는 전쟁으로 불 타버린 집터에 기둥을 세우고 17년 동안 남편도 없이(결혼하고 반년만에 필리핀에서 전쟁으로 사망) 시집살이를 해오며 가게(동시에 가계)를 꾸려온 레이코(다카미네 히데코)의 불꺼진 부엌을 비춘다. 바깥에서 새어들어온 불빛으로 대충의 윤곽을 드러내는 설정이지만 나루세는 그런 정황은 살리되 마치 17세기 회화처럼 음영의 효과를 극대화시켜 가지런히 놓여 있는 주방의 면면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담아낸다. 부엌에 불이켜지자 정갈하고 빈틈없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풍경이 펼쳐진다. 그건 영화 내내 카메라가 비추던 가게 내부에 도열해 있는 술병들과 식료품만큼 체계적이진 않지만 17년(다시.. 2017. 10.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