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32 도서관에서 길 잃기 더 나은 길을 찾기 위해 도서관으로 간다 여기지만 실은 많은 이들은 도서관에서 길을 잃는다. 십진수 분류법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 도서관 서가를 걷다가 무심코 펼친 책 한 권에서부터 길 잃기는 시작된다. 리베카 솔닛은 『길 잃기 안내서』에서 ‘잃다lost’라는 낱말이 군대를 해산한다는 노르드어 los에서 왔음을 강조하며 병사들이 군대라는 대형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더 넓은 세상과 휴전을 맺는 모습을 떠올려보라고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군대란 단단한 대형을 갖춰 외부의 침투를 막는 ‘자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자신이 아는 세상 너머로 나가려 하지 않는 세태를 떠올려본다면 갖은 시험 준비에 열을 올리는 사람으로 가득한 도서관 열람실이야말로 각자도생이라는 시대정신을 체화한 군.. 2026. 8. 27. 연제문학 높은 아파트들로 둘러싸인 연제도서관이 맹수를 피해 몸을 숨긴 초식동물처럼 보인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도 대피소/쉼터를 찾는 마음이 깃들어 있을까. 누가 더 크고 비싼가를 두고 쉼 없이 겨루기를 펼치는 아파트 사이를 벗어나려다보니 어느새 연산골목시장으로 발걸음이 닿는다. 커다란 이마트 오른편 아랫길은 야트막하고 낡은 집이 이어져 있다. 오가는 사람도 눈에 띄지 않고 갈수록 좁아지는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문득 내가 나고 자란 곳이 이즈음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연제고등학교 정문에서 동양아파트를 거쳐 다시 연제도서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여기가 어디쯤인지를 가늠해본다.부산시 동래구 연산 7동…. 어린이 유괴 사건이 뉴스에 자주 오르내리던 1980년대 중반, 누나와 나는 텔레비전 옆에 나란히 서서 빗.. 2026. 8. 8. 덩굴 같은, 이끼처럼 두 가지를 바란다. 걸으면서 노래 부르기와 풀꽃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요즘엔 하나 더 늘었다. 새를 관찰하기) 노래는 늘 마음속에 흐르고 있지만 나는 그걸 자주 잊는다. 흐르는 마음을 기억하기 위해 흥얼거리고 싶다. 노랫말을 알고 있으면 더 오래, 더 자주 부를 수 있겠지. 풀꽃나무는 늘 우리 곁에서 손짓하며 흔들림으로 인사한다.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표정도 없기에 곁에 있다는 것도 매번 잊어버리는 풀꽃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아이든, 어른이든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에 더 귀기울이는 모든 이에게. 그림책을 펼쳐놓고서 이야기만 따라가는 이에게 지나쳤던 그림 앞으로 돌아가 천천히 짚어가며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풀꽃나무를 곁에 두고서 향기나 빛깔이 아니라 표정 없음에 관해, 특별.. 2026. 7. 27. 삶에 이르는 병 2026. 6. 11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머리를 감으면서 한 사람을 생각했다. 이 사람에게 보내는 시를 써야겠다. 한량이나 불량배처럼 어슬렁거리지 못하고 이 커다란 도시 이곳저곳을 터벅이며 깃들 곳을 찾아 느리게 움직이는 탓에 웅크린 것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서둘러 죽지 않기를, 끝내 늙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고 싶다. 첫 마디를 뭐라 건네야 할까, 추운 겨울날 외투도 없이 모임에 왔던 그날부터 이야기 해야할까, 소도시에 문화예술 활력을 불어넣고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글을 통해 상상해보던 곳에서 시작해야 할까 서성이다 '삶에 이르는 병'이란 제목을 떠올렸다. 당신이 병에 걸렸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 병은 평생 당신과 함께 할 거다. 병명은 삶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살아라 生きる.. 2026. 6. 12. 볕을 따라 2026. 3. 7이번주 오랫동안 강의를 했던 대학에서 1년만에 다시 강의가 있었다. 떠난다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늘 떠나야겠다 마음 먹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강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대학 강사 또한 떠나라고 하기 전까지 제 발로 떠나긴 어렵다. 나는 다시 강의실로 돌아갔다. 대학은 강사를 강의라는 기계를 돌리는 데 빠질 수 없는 부품 정도로 여기기에 대학엔 나를 반기는 이가 없다. 강의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있었던 곳으로 돌아 '왔다'가 아닌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 '갔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강의실을 내 현장으로, 내가 꾸리는 살림으로 여겨야겠다는 마음을 붙잡고서 갔다. 꼭 대학 뿐만 아니라 어느 일이든 어느 곳이든 이젠 누군가가 나를 잡아주길 바랄 수는 없다고 느낀.. 2026. 3. 21. [마감] 2026년 상반기│문학의 곳간│가장자리를 밟고 선 2026년 상반기│문학의 곳간│가장자리를 밟고 선작은이들이 모여 작은 자리를 내어놓고,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잇는, 작은 모임 .2013년 첫 발을 내딛고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2026년 상반기를 맞이합니다.지난 분기엔 한국문학과 어깨동무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2026년 봄부터 2026년 여름 동안은 이라는 이야기로 이곳과 저곳을 가로지르며 '선'을 넘나들려고 합니다. 가장자리를 밟고 선 선 넘지 않는 적당한 거리두기를 미덕으로 여기지만 자꾸만 금을 밟는 사람이 있습니다. 늘 끄트머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중심으로 가기는 멀고 다른 곳으로 넘어가기엔 가까운 곳에 머무는 사람. 넘실대며 매번 형체를 달리하는 해안선처럼, 가장자리를 밟고 선 이들이 구불구불 빙.. 2026. 3. 19. 이전 1 2 3 4 ··· 7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