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2
공부에 관해서는 혼자서 잘 하지 못하는 저는, 이번 세미나가 많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왜 혼자서는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과 함께 내가 계획하고 있는 연구가 나의 삶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 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질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도 하구요, 그보다 ‘연구’의 당위를 제도권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닌, 내 삶을 설명하고 아울러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써의 당위로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론과 개념에 대한 이해와 적용은 <삶-연구>라는 바탕 위에서 이루어질 때라야 더욱 정확하게 엄밀해질 수 있는 것이겠지요. 개념과 이론에 대해 흐지부지하거나 두루뭉술하다는 것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와 삶과의 연계가 흐지부지하거나 두루뭉술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개입’에 대한 새로운-그러나 너무나도 자명한-용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학문(글쓰기/글읽기)을 통해 세계와 접촉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 삶과 연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자각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삶과 연구가 유리되어 있을 때, 세계와의 접촉 또한 엉성하고 어정쩡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엉성함과 어정쩡함을 감추기 위해 원한·증오가 동원되거나 자기 비하를 일삼는 것이겠지요. (비굴함과 자신없음 또한!)
『호모 사케르』를 읽으면서 저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환기 받을 수는 있었던 터라 ‘이번에는 제대로 읽고 있군’이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그 책에 대해서 별다른 논의를 펼치지 못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받는 ‘환기’가 기왕의 이론서 읽기와 별다른 차이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환기’는 아감벤으로‘부터’ 받는 것이었지 아감벤‘에게’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책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조금이라도 이해가 되면 안도하고 그렇지 않음 오만상을 찌푸리며 ‘반드시 너를 이해하고(수용하고) 말리라’를 되뇌이기에 급급했던 것이죠.
‘개입’이 아닌 ‘수용’의 자세(무조건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해야 한다라는 강박)는 노예화된 습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겠지요. 평소에 ‘노예 상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인데(정말 그럴까요?) 이론서를 읽을 때 이러한 태도는 곧잘 ‘판단 중지’되어버리는 거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론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삶과 연구’의 연계 고리가 느슨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과연 느슨하기만 한 것일까요? 저는 이 문제가 ‘쪼여주기만 하면 만사형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느슨한’ 조차 만들어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 자문해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고민을 새롭게 시작/진행 시켜나가야 할 듯합니다. 물론 열심히 공부하면서요.
저는 이 문제가 저의 글쓰기와 굉장히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문학(시스템) 밖에서 문학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저의 기이한 포지션’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학부 때 <문학과지성사> 계열의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더 정확하게 말해서 책장을 넘기면서 놀았지요),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범주는 이때 형성된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쓰고 있는 글들이 상당부분 <문지>의 문학적 범주와 겹쳐있거나 그것에 붙들려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세미나를 하면서, 또 그 뒤 후기에 대해 고민하면서 그와 관련한 좀 더 분명한 상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쓴 글들의 도입부는 대개가 문학 밖에서 시작하는데 이것이 문학에 대한 저의 위치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문학으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두고 있는냐’에 있기보다는 ‘내게 있어 문학은 무엇이냐’라는 좀 더 근본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그 ‘위치’를 특권화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문학주의자들에게서 발생하게 되는 한계를 대뇌이면서 위안을 삼거나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스스로를 추켜세우며 자만을 하거나 자위 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글이 정작 논의를 시작할 때면 문학 밖에서 비판적인 거리두기를 할 수 있던 위치가 지워버리고 어느새 문학 안으로 들어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 이 말은 거짓에 가깝습니다. 제가 쓴 글의 도입부는 문학 밖이(문학과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는 위치) 아니라 문학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전략적인 위치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글이 진행되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이러한 자기기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또한 해보았습니다. (물론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이 비단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문제를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려볼까요? 저는 종종 ‘거세된 남성성에 대한 수줍은 토로’를 하곤했는데요, 이 토로 또한 ‘<삶-이론>의 유리’와 ‘문학 밖에서 문학주의자를 자처하는 기이한 포지션’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수줍게 드러내던 거세된 남성성에 대한 토로가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남성성의 회복일까요? 아님 남성성에 대한 비판일까요? 그것도 아님 또 다른 남성성의 발현일까요? 거세된 남성성에 대한 저의 토로는 남성성을 비판하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있지만 결코 전면적인 태도를 취하지는 않는데, 그것은 ‘거세’라는 표지로 자신을 감춤으로써, 다시 말해 ‘사이’에 위치함으로써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반복’해서 ‘거세’에 대해서 말할 수 있으며(왜냐하면 이것은 남성성에 대한 비판적인 위치를 가지는 것이니까요) 그 어떤 행위를 취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저를 놓아둔 것은 아닐까요. (이와 같은 애매한 위치는 비단 거세된 남성성에 대한 회복의 의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것이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겠으나 다른 위치를 상상하는 것이 다소 어렵다는 사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노예에게 '전면전'은 곧 죽음>이라는 자명한 명제는 그저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저는 지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거세된 남성성을 회복하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 그러한 토로를 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남성성에 대해 비판적 거리두기를 통해 훼손된 남성성을 회복하는 것! ‘결여’를 활용하여 그러한 결여를 발생시키는 구조를 승인하는 회로 속에 오랫동안 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글쓰기도 이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구요, 삶-연구의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한 것 또한 전면적으로 나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결정적으로 내가 묻지 않은 것, 한사코 말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 고민해봅니다. 단적으로 말해 문학이 타인의 고통을 해소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문학이 그런 것을 할 수 있을까, 그러자면 좀 더 전면적인 태도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위치는 남들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을 선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을 아닌가, 그것이 어떠한 신념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 질문들에 대한 '답'은 다음 후기로 미루어야 할 듯합니다. 다음 세미나 후기가 또 다른 문제에 대한 반성으로 채워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요. ‘반성’으로 일관한 후기처럼 보여서 읽기 불편하실 듯도 합니다만, 이 문제는 ‘반성’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그닥 우울하거나 힘이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거리 레이스를 펼쳐야 할 것이라는 생각만이 선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르셀로나에서 황영조가 금메달을 딸 수 있게 도운 페이스 메이커(?) 이봉주가 또 다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처럼(올림픽 비유는 구립니다), 아니 최고의 드럼 명반의 대부분이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들 연주앨범인 것처럼 이 장기 레이스에서 서로가 지치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게끔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주고 받으면서 갱신(어쩌면 갱생에 가까운)을 도모하고 싶습니다.
다음 세미나 때 뵙겠습니다.
* 처음으로 해봤던 잡지 읽기 세미나가 '파토'난 이후 학교 밖을 전전하며 읽기와 쓰기를 통해 '작은 공동체'를 꾸리고자 무던히도 애쓰던 때 남겼던 세미나 후기를 기록 차원에서 올려둔다. 이 시기 나는 '자기 심문' 혹은 '자기 질문'에 집중하면서 '함께 하는 공부'에 어떤 식으로 개입할 것인가를 열심히 고민했던 듯하다. 세미나를 통해서 접한 '포지션'이라는 단어가 내 삶을 설명하는 강력한 틀로 다가왔을 때, 처음으로 '삶'과 '연구'를 이을 수 있는(-) 계기를 잡을 수 있었다. '삶-연구'에 대한 고민은 이 시기 함께 했던 공부, 세미나의 산물이다. 이 시절 나는 좋은 세션맨이 되고 싶었다. 나는 무대에 서고 싶었다. 경기에 나가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연주'였기에 역할은 중요하지 않았다. 작은 카페와 소소한 모임들의 거처로 옮겨다니며 읽었던 책들과 썼던 발제문들, 그것들을 두고 나누었던 말들이 모두 '연주'였을 것이고 지금의 내 몸-글은 대개가 그때의 세미나를 출처로 하고 있다. 어설픈 후기에서 유독 내 눈길을 끄는 문장은 다름 아닌 "다음 세미나 때 뵙겠습니다"라는 천진하고 건강한 인사다. 바로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장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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