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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곳간52

문학의 곳간(52) 2019. 2. 8.
문학의 곳간 50회_사치의 가계부를 쓰는 시간 _ 50회_김중미, 『꽃은 많을수록 좋다』(창비, 2016)_부산 중앙동 '한성1918'_2018. 11. 24 사치의 가계부를 쓰는 시간 늦은 아침을 지어먹고 어제 사람들과 사용했던 그릇들을 씻는 후 차를 내려 마시니 한낮의 빛이 서재를 가득 채운다. 초겨울 햇살에 평소엔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먼지와 잡티(잔해물!)들이 눈에 밟혀 비질을 하니 다소간 상쾌하다. 늦은 새벽까지 ‘문학의 곳간’에서 나누었던 말을 되뇌이고 곱씹으며 혹여라도 놓치고 있는 건 없는가 염려하며 기록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헤아려보았지만 ‘그 순간’에만, ‘그 현장’(between)에서만 드러내는 장면(scene)이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휩쓸리고 휩쓸려간 말들과 감정들을 애써 붙들어두기보단 저나름의 길을 가도록 잘 배웅하는 것도 필.. 2018. 11. 25.
"등을 내어주는 업기" 2017. 12. 3 1. 지난 주 토요일, 작년 이맘 때쯤에 출간되었던 저의 첫번째 평론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대개의 문학 평론집이 비슷한 형편이긴 하겠지만 누구도, 어디에서도 다루지 않아 '한번도 신간이었던 적이 없던 책'을 그간 만나왔던 친구들과 함께 '오늘만은 신간'일 수 있는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 2. 2013년 여름부터 이라는 모임을 매달 1회씩 정기적으로 열어왔습니다. '문학'이 저 멀리 있는 고고한 언어의 상찬만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모두의 '곳간'임을 매회 열면서 알리고 저 또한 이 모임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분기별로 '곁에 있는 작가'를 초청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이번엔 제가 그 이력에 신세를 .. 2017. 12. 3.
문학의 곳간 41회 <무한한 하나>(산지니, 2016) 바로 그 한 사람-서문을 대신 하여 1내게 비평은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애씀의 노동이다. 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만나는 일, 한 사람을 결정적으로 만나는 일, 침잠과 고착의 위험함을 무릅쓰고 ‘바로 그 한 사람’으로 만나는 일. 무언가를 하기 위해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무한하게 만나기 위한 시도로써의 글쓰기. ‘무한하다는 것’은 특정한 대상이 소유하고 있는 특별한 자질을 지칭한다기보다 모든 ‘하나’가 공평하게 나눠 가지고 있는 속성을 가리키는 말에 가깝다. 중요한 건 특별한 능력이나 자질이 아니라 모든 하나(존재)에 깃들어 있는 잠재성에 있다. 아무 것도 아닌 하나가 누군가에게 ‘바로 그 하나’이자 ‘절대적인 하나’가 될 때 ‘무한’이라는 끝이 없는 공간이 열린다. ‘바로 그 하나’란 사.. 2017. 11. 18.
나 아닌 것과 함께―조은, 『또또』(로도스, 2013) 산책 :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는 상처 받은 채 사직동 낡은 집으로 왔던 작은 존재 ‘또또’와 시인 조은은 함께 살았던 17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 두 번 산책을 했다. 아픈 또또를 위해 나섰던 매일매일의 산책에서 그들은 광화문 일대와 막 개방되었던 인왕산 숲길을 빠짐없이 익혔고 마침내 ‘그들만의 길’이 생길 정도가 되었다. 상처 받은 이는 걷는다(김영민). 건강을 위해서나 삶의 여유 따위를 위해 걷는 게 아니다. ‘걷기’라는 기본적인 행위에도 이미 들러붙어 있는 자본제적 습속과 이윤 추구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목적을 잊고, 상처 받을 수밖에 없는 세속의 체계 바깥으로 나-아-가-보기 위해, 없던 길을 찾으며 걷는다. 오랫동안 독신 생활을 해온 시인 조은은 원래 산책을 즐겨하고 좋아했을 것.. 2017. 10. 14.
임솔아, 빨간 사슴이라는 말을 들었다.사슴은 태어나면서부터 갈지자로 뛴다는 말을 들었다. 먹히지 않으려고 여자라는 말을 들었다.먹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 목소리는 어디까지 퍼져나가 어떻게 해야 사라지지 않는가 눈물을 흘리면 눈알이 붉어졌다 고통에 색이 있다면 그 색으로 나는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창문이 열려 있다면 창문을 넘어 번져가 창밖의 은행나무와 횡단보도와 건너편 건물의 창문까지 부글부글 타오르는(창문을 열어줘) 저것을 나는 고통의 색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람의 피가 빨갛다는 말을 믿고 있다 새빨간 태양이 떠오를 때처럼 점점 눈이 부시다 살인자에게서도 기도를 빼앗을 수는 없다는 나의 한 줄 일기와당신들이 자살하게 해달라는 나의 기도 사이를 헤맬 것이다. * 이곳으로 가면길이 없다는 말을 들었고 인간이라는 말을 .. 2017. 10. 3.
그 사이를 다만 걸을 뿐―서른 아홉번째 <문학의 곳간> 2017. 9. 30 중앙동 '히요방'_봄이 / 2017. 9. 30 / (39회) 네 발 짐승이 까치발을 하고 두 발로 서서 창밖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더 높은 곳에 올라서고 싶은 것인지, 위태롭게 기대어 서보고 싶은 것인지 짐작 하기 어려운 것은 커튼 사이로 몸을 감추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동물과 아이의 눈동자가 아무리 맑고 초롱초롱하다고 해도 정작 그 눈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신묘한 동물이라고는 하나 어느새 (도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버린 고양이가 높은 곳에 오른다고 해도 필시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며 세상을 풍경화로 단순화시켜 감상하고자 하는 인간의 시선(권력)과는 다른 방식으로 바깥을 보고 있을 게다. '바깥'을 기웃거리게끔 유혹하고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순간을.. 2017. 10. 1.
선물의 자리 : 부음(訃音)이 용서로 부화할 때 2017. 8. 28 계란 한 판 두부 한 모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계란 한 판과 두부 한 모를 받았다 아직 친구라고 할 수 없는 그는 처음 우리 집에 왔고 그를 만난 것도 처음이다 그가 있을 때 골목으로 두부 장수가 종을 흔들며 지나갔다 계란을 오래 두고 바라봤다 밖에 나갈 때나 밤늦게 돌아올 때나 마당에 우두커니 서게 되는 나의 마음이 슬픈 것에 매번 놀라며 그러다 한 친구의 소식을 들었다 죽은 줄 알았던 친구 그래서 한 번에 용서할 수 있었던 친구 살아 있었다 나와 가까운 곳에서 그 옛날 우리가 있던 곳에서 한꺼번에 부화된 어두운 시간들이 ⏤조은, 「계란 한 판 두부 한 모」, 『따뜻한 흙』, 문학과지성사, 2003. 처음 만나는 사람이 계란 한 판을 사들고 집으로 방문했다.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에.. 2017. 9. 3.
서른 다섯번째 <문학의 곳간> 김비x최은순 2017. 4. 28.
부상을 안고 2016. 12. 3 어두워지진 않았지만 급격히 쇠락하는 오후 6시의 햇살 아래에서 심호흡 하듯 새긴 말이 있다 . 오후 내내 갑자기 호흡이 가쁘고 심장이 가파르게 뛰어 몸이 왜 이러나 노심초사 했다. 내 몸을 급히 무너트리는 원인을, 무심한 그 폭력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다. 당장 피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까지. 노골적이고 추악한 폭력이지만 짐짓 모른 척, 은밀하게, 집단적으로 눙치며 행해지는 것이기에 전면적으로 대응하지 않고는 맞서는 것이 쉽지 않은 난관 앞에서 차마 싸우지 못하고 다만 지나가버릴 때까지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싸움을 시작할 수는 있다. 이런 싸움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단 끝까지 싸울 수 있는가, 끈질기게 버틸 수 있는가에 대해 답.. 2017.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