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올,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책을 읽다가 어떤 문장, 구절, 단어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다 시간을 흘려보낸다. 밑줄을 긋거나 그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며 순간을 음각해보지만, 나는 분명히 이 대목을, 이 구절을, 이 순간을 흔적도 없이 잊고 말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이 자리로, 이 순간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결코 활자들을 붙들어 들 수 없다. 아니 활자가 내게로 오는 순간, 그것은 활자가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가 되어, 소리의 육체(육성)가 되는 순간이기에 이 순간은, 목소리가 머무는 지금-여기-우리의 시간 속에서만 유효하다. 내가 다음 구절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은, 잊을 줄 알면서 이 순간 앞에서 무위의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이 자리로 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
2010. 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