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
누군가를 부를 때 쓰는 요긴한 말. 우리는 아직 이 말보다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호명 방식을 가지지 못했다. 하여, 타인을 부르는 보다 요긴한 말을 새롭게 캐내거나 너무 자주 써서 한없이 닳어버린 '저기요'가 가진 의미의 심연을 발굴해낼 필요가 있다.
저기, 누군가가 있다. 가닿고 싶지만, 필시 가닿지 못하고 그 앞에서 바스러지고야 '말'. 저기, 누군가가 있기에, 속절없이 부른다. 그것은 첫 말, 다음 말을 기약할 수 없는, 오직 부름으로써 제 몫을 다해버리기에 '저기요'를 통해서는 결코 다음 말을 꿰낼 수 없다. 그것을 알지만 '저기요'는 얼마나 간곡한 부름인가. 저기, 누군가가 있다는 작은 사실 하나만으로 선뜻 태어나는, 맹렬히 달려가는, 말. 여기에 있지 않고 저기에 있기에, 오직 부를 수만 있는 말. 그 말이 동앗줄이 되어 저기에 가닿을 수 있을까. 저기에 있는 그/녀를 이 부름을 통해 여기로 당겨올 수 있을까. 여기에 '없지만' 저기에 '있는' 존재를 부르는 말, 만지는 말, 녹아사라져버릴 말. 그/녀가 저기에 있음을, 동시에 내가 여기에 있을 수밖에 없음을 슬프게 인정하는 호소. 그/녀가 돌아보는 순간 나는 돌이 되어버릴 것이 틀림없으니 그/녀가 듣는 '저기요'는 내가 부른 말이지만 필시 내가 알지 못하는 메아리의 목소리와 같은 것이리라. 그 한마디를 공글리면서 얼마나 많은 말들이 태어났던가. '저기요'는 수많은 말들을 잉태하는 '말'의 어머니. 그러나 속절없이 불어나기만 했던 그 많은 말들은 '저기요'라는 단 한마디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저기요'는 수많은 말들을 잡아먹는 '말'의 아버지. 저기요. 아직 다 부르지 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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