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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그림자가 비추다

by 작은 숲 2024. 8. 4.

2024. 8. 2

 

5월부터 진주를 오간다. 8월이 되었으니 한 계절을 오간 셈인데, 누구와도 사귀지 못하고 무엇도 좋아하지 못했다. 여전히 낯설게 오갈 뿐이다. 이번 주는 진주에서 하루 묵어야겠다 싶어 숙소를 잡고 그곳에서 남강까지 가는 길을 찾아보았다. 다들 여름휴가를 떠났는지 오늘 낮부터 <살림글쓰기> 모임에 나올 수 없다는 알림이 자꾸 울린다. 이런 날엔 서로 더 가까이서 살갑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저마다 쓴 글을 차근차근 짚어가며 이야기를 건네야겠다 싶어 여느 때완 다른 몇 가지 이야기를 적어두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모임을 정리하고 숙소로 가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뒤 남강 곁을 달렸다. 멀찌감치서 바라만 봐왔던 터라 그저 이뻐보이기만 했는데, 그 곁을 달리다보니 새삼 강이 어떻게 흐르는지 궁금했다. 물살은 센지, 물빛깔은 어떤지, 아니 흐르고는 있을까? 남강은 어쩐지 흐르지 않는 커다란 호수처럼 느껴진다. 남강을 예쁘게 찍은 사진을 많이 본 탓이겠거니 생각하며 검은 남강 곁을 조용히 달린다.

잘 닦여 평평하고 깨끗한 길인데, 이상하다 느껴질 정도로 심심하다. 무덥고 습도가 너무 높은 까닭도 있겠지만 여느 때와 달리 기운이 나질 않고 금세 숨이 찬다. 진주와 사귀지 못한 탓이다. 그러고서 곁을 누리고만 싶어했기에 즐겁거나 기쁘지 않고 그저 숨만 찬 거다. 남강 둘레엔 가로등이 빼곡해서 장림에서부터 다대포 여기저기를 누비며 달릴 땐 본 적 없는 내 그림자가 내내 따라 다녔다. 그 덕에 달리는 모습과 자세를 처음으로 찬찬히 보게 된다. 생각과 달리 몸통을 많이 움직이고 머리 흔들림이 심하다. 달리는 자세는 그리 나쁘지 않다 여겼는데, 그림자에 비친 모습은 형편없다. 달리는 동안 그림자를 피할 수 없었기에 형편없는 내 모습을 내내 마주하며 달렸다.

낯선 자리에서 드러나는 말과 마음이 있다. 들통 났거나 들켰다기보단 우연히 나타나기에 손쓸 수 없는 모습. 남강 곁을 달리며 진주에서 드러나는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달리는 내내 나를 따라오는 그림자가 그 모습을 비춘다. 누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애쓰는 일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아니 애쓰지 않고 마음을 담아 건넬 수 있을까. 서운한 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내 이야기를 차분히 이을 수 있을까. 무언가를 듣거나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지 않고도 눈을 반짝이며 내가 지닌 것을 끝없이 내어놓을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그러길 바랐으나 별 수 없이 실패했다. 

잘 닦인 트랙을 심심하게 달린다. 남강 주변 건물과 거리는 이상하리만치 비슷한 모습이다. 남강이 진주를 풍요롭게 하는 게 아니라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누가 보더라도 보기 좋다 여길 수 있도록 매끄럽고 예쁘게 닦아놓는다면 남강이 외려 진주를 만나고, 느끼고, 누리는 데 훼방을 놓는 가림막이나 높은 문턱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서울 인근 도시가 아닌 곳은 죄다 관광지로 만들어놓고서야 안심하는 눈길이 진주가 자랑으로 삼은 남강 둘레에도 가득하구나. 그리고 진주와 사귀지 못한 나는 고작 이런 까칠한 눈길로만 진주를 슬며시 바라볼 뿐이구나.

오늘 달리기는 숨이 차고 지친다. 그걸 떨쳐내려 달리는 속도도 오르락내리락이다.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다가가 말을 건네며 사귀지 않는 한 즐겁게 누릴 수 없다는 걸 알겠다. 달리기는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펼쳐야 즐겁게 누릴 수 있다는 걸 남강 곁을 달리며 잠시 배운다. 오늘은 내내 ‘그림자’라는 낱말을 품고 달렸다. 그림자가 무언가를 가리는 게 아니라 비춘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아차린다. 내 그림자로 인해 잠시 어두워졌을 자리를 떠올리며 내내 뉘우쳤다. 잘못과 못남이 비추는 자리를 쫓아 허겁지겁 달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이날 묵었던 곳 앞에 뿌려진 성매매 전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