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

상복을 입고 묻는 안부―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by 작은 숲 2024. 11. 26.

 



김애란이 쓴 단편 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엔 다급한 요청이 두 번 나옵니다. 처음은 대학 시절 좋아했던 선배로부터 온 요청이고 그 다음은 어린 시절, 물에 빠졌는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순간입니다. 이 두 요청엔 다행히 응답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요청엔 ‘나’가 응답을 했고 두 번째 요청엔 ‘병만’이라는 또래 친구가 응답해주었습니다. 그 응답의 흔적이 팔뚝에 남아 있어요. 손이 아니라 팔뚝이라는 점에 주목해봅시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팔뚝을 잡았을까요. 그건 잡은 것이라기보단 붙든 것에 가까울 겁니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누군가의 팔뚝을 붙듭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지 않았을까요. 헌데 손이 아니라 팔뚝을 붙들었다는 건 ‘어긋남’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도움을 주고받은 것 같은데, 관계는 어긋납니다.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이 어긋남을 그리고 있습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듯보이지만 어긋나버리고 맙니다. 대학 시절 오랫동안 선배를 좋아했던 건 어쩌면 길고 긴 착각(어긋남)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급하게 팔뚝을 잡아챈 선배가 ‘나’에게 건넨 말은 “문자로 계좌번호 좀 넣어주라. 주민번호랑...”입니다. 그저 ‘용건’만 남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병만’이라는 또래 친구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지만 ‘나’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건네질 못했습니다. 그때 나를 구해주었던 ‘병만’이 일터에서 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사고 원인이나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실은 알려고 하지도 않지요. 

이 소설은 “선배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친구 장례식이 있어 갈 수 없다고 답하죠. 누군가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과 더 이상 도움을 줄 수 없음을 알리는 연락. 소설 주인공 ‘미영’은 끝내 ‘병만’의 장례식에 가지 않습니다. 상복을 벗지도 못한 채 자취방에 누워 울고만 있죠. 


“내가 살아 있어, 혹은 사는 동안, 누군가가 많이 아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내가 아는, 혹은 모르는 누군가가 나 때문에 많이 아팠을 거라는 느낌이.”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비행운』, 문학과지성사, 2012, 44쪽


‘미영’은 뒤늦게 ‘병만’이가 그때 많이 아팠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건 물에 빠졌을 때 내가 다급하게 잡았던 손아귀 힘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일터에서 ‘무슨 사고’로 죽게 되었을 때 병만은 아팠을 겁니다. 그런데 누구도 그 아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병만이가 겪었을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미영’이 장례식장에 가지 않은/못한 건 왜일까요? 그가 겪었을 아픔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음을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학 신입생일 때 ‘미영’은 이런 바람을 품었던 적이 있습니다. “숨은 그림 찾아내듯 누군가 나를 발견하고, 내 이마에 크고 시원한 동그라미를 그려주길 바랐다.”(13쪽) 어린 시절 물에 빠졌을 때 ‘미영’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좀 외로웠다. 아무도 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모른다는 고립감. 그리고 그걸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다는 갑갑함이 밀려왔다.”(41쪽) 일터에서 죽어가던 병만은 어떤 바람을 품었을까요? 누가 그 목소리를 들었을까요?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제목처럼 안부를 묻는 소설입니다. 끊어진 관계를 잇는 목소리이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세상을 가리키는 소설이기도 하고, 저마다가 고립되어 쓸쓸하게 죽어간다는 걸 알리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고, 또 죽었지만 장례식장에도 참석할 수 없는 형편을 말하는 소설이며, 죽어가는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걸 조용히 알리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세상 한쪽에서 누군가가 구조 요청을 합니다. 누군가는 듣고 누군가는 듣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다급하게 손을 뻗고 누군가는 손을 뻗지 못하죠. 응답(respond)할 수 있는 능력(ability)을 가리키는 낱말이 있습니다. 책임(responsibility)입니다. 이 소설은 ‘너의 여름은 어떠니’라며 누군가를 향해 안부를 묻는 게 오늘을 지키고 구하는 작은 책임이라 말하는 듯합니다. 


2024년 2학기 어느 대학 교양 강좌 수업 쪽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