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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별 수 없기에 경이로운, 어떤 힘들

by 종업원 2013. 9. 16.

 

밤이 오래된 마을의 가르마를 타 보이고 있다 청파동의 밤, 열에 둘은 가로등 열에 여덟은 창문이다 빛을 쐬면서 열흘에 이틀은 아프고 팔 일은 앓았다 두 번쯤 울고 여덟 번쯤 누울 자리를 봐두었다 열에 둘은 잔정이 남아 있었다 또 내가 청파동에서 독거(獨居)니 온실이니 근황이니 했던 말들은 열에 여덟이 거짓이었다 이곳에서는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당신이 보고 있을 내 모습이 보인다 새실새실 웃다가도 괜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둘 다시 당신을 생각해 웃다가 여전히 슬프고 서러운 일들을 떠올리는 모습이 여덟이었다 남은 청파동 사람들이 막을 떠나가고 있었다 이제 열에 둘은 폐가고 열에 여덟은 폐허였다

 

                                         -박준, 2 : 8-청파동 2전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문학동네, 2012)

 

 

 

'청파동'은 완전히 파괴된 곳이다. 사람들은 모두 떠났지만 나는 어쩐지 '청파동'에 '아직' 사람이 살고 있을 것 같다. 그곳에 무언가가 가르며 타고 넘어가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사람이 산다는 것, 그것은 별 수 없는 일이며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별 수 없다는 것은, 익숙하다는 것은 경이로운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시에서 완전히 파괴된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구출하려는 시도를 본다. 그리고 곧 그것이 세계를 구원하는 방법임을 직감하게 된다. '2 : 8의 삶'. 불균등, 불평등, 불균형을 삶의 접두어로 삼아야 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발을 딛고 살아가는 풍경. 그러나 '2:8'이 불평등을 가리키는 표지인 것만은 아니다. 나눔(divide/share)의 리듬. 도처에 번져 있는 얼룩 같은 슬픔과 절망을 '2:8 가르마'라는 오래되고 익숙한 비율로 나누는 어떤 시도. '가름'을 '타고' 넘어가는 '힘'. 아픔과 앓음, 폐가와 폐허. 고통을 2 : 8로 가르면 아픔과 앓음으로 나뉘어질까, 끝장을 2:8로 가르면 폐가와 폐허로 나뉘어질까. 아픔과 앓음의 거리, 그리고 폐가와 폐허의 거리. '끝'이라는 유일한 세계를 가른다. 그렇게 타고 넘어간다. 단단한 지면에 발을 딛고 살(리)려는 어떤 애씀들. 별 수 없기에 경이로운, 어떤 힘들.

 

 

201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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