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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시를 함께 읽는다는 것-환대와 초대

by 종업원 2014. 4. 5.

2014. 4. 5

 

 

 

  사람들로 붐비는 고속버스터미널로 누군가를 마중나가는 것. 저는 ‘시를 읽는 것’이 꼭 그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시인’을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웃는 것, 그리고 그/녀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으로서의 시 읽기. 누군가를 먼저 알아본다는 것을 ‘최소한의 환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시 읽기를 통해 ‘문학적 환대’라는 자리로 어렵사리 접근할 수 있을 겁니다. 문학적 환대란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먼저 알아보는 것’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환한 미소로 손을 내미는 것은 상대를 향해 불을 비추는 것입니다. 아니 상대가 비추고 있는 불빛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신과 내가 서 있는 장소를 함께 환하게 불 밝히는 일. 어쩌면 ‘내가 당신을 먼저 알아봤다는 것’은 ‘환상’인지도 모릅니다. 알아봤다는 것은 이미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혹은 먼저 비추고 있는 불빛에 다가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수많은 활자들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환상이자 환영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환상과 환영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착각일 수도 있는 그 짧은 순간이 개창(開倉)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문학이라는 환영. 그러니 누군가를, 서로를 ‘먼저’ 알아본다는 것을 차라리 ‘기적’이라 바꿔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환대라는 등불을 서로에게 비출 때 비로소 우리가 다가 설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문학이 누구의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먼저 알아보고 환대라는 등불로 서로를 비추는 행위라면 그것을 ‘공통적인 것(the commom)’이라 바꿔 부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한 명의 시인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먼저 알아보고 우리를 향해 웃으며 손을 내미는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니 혼잡한 고속버스터미널로 시인을 마중나간 것은 우리였지만 ‘이미’ 마중나와 있던 것은 시인입니다. 다시 묻고 싶습니다. 알아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직 만나지 못한 이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건넨다는 것입니다. 글쓰기와 읽기가 꼭 그와 같습니다. 흔히들 ‘난 가진 게 없는 걸?’이라 생각하겠지요. 환대란 바로 가진 게 없다는 ‘나의 생각’을 밀어내고 아울러 ‘넌 가진 게 없어’라는 체제의 명령을 밀어내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자아’를 뚫고 나가 ‘너’에게 다가서는 노동이라 바꿔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상대가 건네는 인사를 잘 건네받는 것도 하나의 노동이며 동시에 환대의 능력이기도 하겠습니다. 잘 읽는 것, 또 잘 쓰는 것을 저는 환대의 능력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환대 없음’의 세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표정. ‘환대 없음’이란 누군가가 없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host(=guest) less. 손님(주인) 없음. 환대(hospitality)가 없는 세계란 ‘주체’가 없는 곳을 가리킵니다. ‘읽고 쓰는 행위’란 이 세계 안으로 누군가를, 제 3자를 부르는 일입니다. 저는 그것을 ‘문학적 환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무언가를 읽고 쓴다는 것은 ‘홀로 있음’(1의 세계)과 ‘우리’(2의 세계)를 벗어나 함께 ‘타자’(3의 세계)를 초대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읽고 쓸 때 ‘나’를 지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환대)의 부재를 가리키는 것일 테지요. 읽고 쓰는 것이 우리의 능력일 수 있다면, 그것이 공통적인 것을 함께 돌보고 가꾸는 것이라면 ‘당신이 읽고 쓴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을 이렇게 바꿔 써도 좋을 것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누구를 초대하고 있습니까?’ 시를 함께 읽고 있는 지금-여기, 우리는 함께 어떤 이를 부르고 있고 또 불러야 하는 걸까요? 시인의 것도 독자의 것도 아닌 목소리로,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함께 부르는 목소리로, 다름 아닌 환대의 목소리로 이곳으로 초대해야 할 이는 누구일까요?

 

 

 

  * 이은주 시인 서평회(2014. 3. 28_백년어 서원)에서 짧게 낭독했던 글을 변주하고 말을 덧붙여 보았다. 처음으로 함께 시를 읽었던 <문학의 곳간> 7회(2014. 3. 25 /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창비, 2012_남천동 <고양이 다방>)의 후기로 읽어도 좋겠다. 4월 한달 간 빠듯하게 읽고 써야 하는 약속의 시간 앞에서 옷매무새를 매만지는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몇 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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