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

사무라이들(2)

by 종업원 2013. 7. 31.

2013. 7. 31


야마다 요지(山田洋次)의 사무라이 3부작 중 한 편인 <숨겨진 검, 오니노츠메>(隱し劍 鬼の爪, 2004)에서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져버린 한 장면, 아니 한 순간. 행정관료가 되어버린 사무라이(키타기리 무네조)는 같은 스승 아래에서 검술을 배웠던 옛동료(야이치로 하자마)와 불가피하게 대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무네조는 '말'로 하자마를 설득하려 하지만 그는 오직 '칼'로서 답하려고 한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권력(말)에 이용 당해 추방된 이를 말로 설득할 수는 없는 노릇일 터. 헌데 이 둘의 대결은 침해당한다. '칼'의 대결 사이에 '총'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정당한 대결의 불가능함. 신식군 훈련을 받은 병사가 쏜 총에 칼을 쥔 하자마의 손목이 날아가는 순간! 





그들이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두른 것은 옳고 그름을 판명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저 불가피한 '난관(aporia)을 뚫어내는 한 방식으로서의 그들의 오랜 전통이었을 것이다. '총'이라는 시대의 흐름은 옳고 그름 뿐만 아니라 전통까지 단숨에 파괴해버리고 그 파괴의 속도만큼이나 빨리 단일한 가치체계로 세계를 통합해버린다. 영주의 부덕함을 뒤늦게 알고 무네조는 스승으로부터 배운 숨은 비기인 '도깨비 발톱(鬼の爪)'으로 영주를 살해한다. 저 비기의 요체는 흔적을 남기지 않은 것인 터라 누가 영주를 죽였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이 아닌 어떤 다른 것의 소행'이라는 사인(死因)이라는 진단은 의미심장한데, 이 '원인 없는 원인' 앞에서 내가 감지한 것은 사무라이의 사라짐(몰락)이었다. 영주를 죽인 것은 사무라이의 비기(秘技)였으며 그것은 오랜 시간동안 조형해오던 '정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정신은 복수(반란)가 되지 못하고 그저 땅에 묻힌다. 죽은 것은 영주만이 아니라 칼을 쥔 사무라이의 손목이나 '숨겨진 검'처럼 관통당하거나 묻혀 사라진 한 시대의 정신이기도 하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를 함께 읽는다는 것-환대와 초대  (0) 2014.04.05
별 수 없기에 경이로운, 어떤 힘들  (0) 2013.09.16
사무라이들(1)  (0) 2013.07.28
부사적인 것(1)  (0) 2013.06.13
잡담의 급진화 : (1) 인용한다는 것  (0) 2013.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