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

유나의 '체질'(<유나의 거리>-①)

by 종업원 2014. 10. 29.

2014. 10. 29

 

 

 

 

"엄마, 전 제가 어딜가든 저랑 친했던 언니, 동생들, 버리고 갈 순 없어요. 전 그 사람들이랑 어울려 사는 게 제 체질에 맞고 좋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어요."

-<유나의 거리> 46회(임태우 연출, 김운경 각본, JTBC, 2014) 

 

 

<유나의 거리> 46회. 어린 시절 자신을 버렸던 엄마를 만난 후 유나의 삶은 급격히 변한다. 한번도 가져본적 없던 아파트와 자동차, 헬스 회원권은 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간 함께 어울렸던 동료들, 이웃들과 헤어져야만 하는 댓가를 요구한다. 유나가 흔들렸던 것은 갈망했지만 가져보지 못한 엄마의 품과 그간 경험해보지 못한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소중함 때문이였을 것이다. 그 흔들림 속에서 유나는 부모없이 홀로 고생했던 시간을 보상 받길 원하거나 그런 원한의 감정을 볼모로 삼아 욕심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기보다 스스로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자신의 체질을 자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체질이란 '끼리끼리'나 '취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간 서로를 보살피며 어울렸던 곁의 사람들을 버리고 자기안온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유나가 말하는 체질이라면 그것은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으며 또 그렇게 어울려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사람살이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동시에 사람이 지켜야 하는 사람됨의 도리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나의 거리>가 부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진솔한 삶과 그 애환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 근래 보기 드문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지만 거의 매회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살이 속에서 오래 전에 잊어버려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다시 말해 누구도 '가치'나 '희망'으로 삼지 않는 '사람됨의 도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이야말로 이 드라마의 진정한 미덕일 것이다.      

 

다시 만난 엄마와의 결별을 선택한 후 홀로 거리를 걷고 있는 유나의 모습을 카메라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담아낸다. 달려가는 버스를 잡아타기 위해 힘차게 뛰는 유나. 지난 날, 소매치기를 하기 위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버스를 탔다면 이 장면에서 유나가 올라탄 버스에서 내쉬는 가쁜 숨은 과거의 그것과는 다른 것일 테다. 여전히 가진 것 없는 불확실한 환경이지만, 마찬가지로 삶의 조건은 나아지거나 바뀌지 않았지만 버스를 향한 유나의 발걸음과 가쁜 숨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가쁜 숨은 어떻게 벅찬 숨으로 재생되는가? 유나가 제 힘으로 스스로의 체질을, 자신이 살아온 삶의 시간과 그 이력을 지켰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사람들과 어울려 살며 도움을 주고 받던 그 사람됨의 도리를 지켜내었기 때문이다. 유나가 벅찬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것은 그녀가 탄 그 버스가 지금 '곁의 사람들'에게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대라는 비평  (2) 2015.12.25
무명의 삶  (0) 2015.12.18
도움닫기 : '함께'라는 이중의 서명  (0) 2014.10.26
시를 함께 읽는다는 것-환대와 초대  (0) 2014.04.05
별 수 없기에 경이로운, 어떤 힘들  (0) 2013.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