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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2011년 4월 24일

by '작은숲' 2011. 4. 26.



  초저녁에 잠이 들어 새벽 3시에 깨었다. 김형술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한번의 벨소리 후에 바로 끊어졌는데, 저녁에 보낸 메시지를 그제서야 확인했나 짐작했지만 아직 메일을 확인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전화를 했던 것일까. 어제 밤에 마감한 <<세드나 >> 2호에 실릴 원고를 다시 읽어봤다. 서울에 체류 중에 k 선생께 「문장과 얼굴」이라는 제목을 한 그 원고를 첨부한 메일 한통을 보냈다.

 

  mono의 음반을 들으며 이세기 시인의 시를 읽었다. 「서쪽」이라는 시를 읽으며 며칠 전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내 아버지가 발톱을 깎아주는 꿈이었는데, 너무 짧게 자르는 것만 같아 엄지 발가락 발톱만을 자르고 도망치는 꿈이었다. 그게 후회되었다. 조금 아프더라도 다 자를 걸, 뒤늦게 후회되었다.

 

서쪽

 

이세기

 

그해에는 삼월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가랑눈은 인적 없는 바닷가에 내리고

간간이 눈발이 날리듯

그해에

 

배를 타고 월북을 하였던 둘째 작은아버지는 반공법으로

월남에서 돌아온 매형은

목발을 한 채

이틀 밤을 묵고 섬을 떠났습니다

 

무서운 밤이 지났습니다

 

갈대 이파리 살 부비는 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렸습니다

그해에는 된비 오는 소리도 밤새 들렸습니다

뒤울에는 바닷바람도 불었습니다

 

흙을 파먹다 부황이 들었다는 배를 타지 못한

흐냉이 삼촌은 끝내 죽었습니다

쉬쉬하는 소리와 함께 언 땅에 묻었습니다

 

배를 탈 수 없었던

털보 작은아버지와 넙잭이 작은아버지는

인천으로

아버지는 목포로 갔습니다

 

바닷가에 눈이 내리고

 

어두운 밤하늘에서는

쟁쟁 꽹과리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피묻은 뱃사람이 거적을 뒤집어쓴 채

마을로 올 것만 같은

밤이 지나고

 

그해 상수리나무 숲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나는 정처없이 갯바위를 서성거리거나

둠벙에 얼굴을 비춰보았습니다

 

그러나 날이 새면 뱃멀미가 나듯

바다를 보았습니다

뱃물이 고이듯

밑바닥 어디에선가 물새 떼 우는 소리가 났습니다

 

살을 에는 바닷바람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평온을 찾았습니다

 

왼종일 집은 텅 비었고

무쉬날이 되어

갯가로 나았다 돌아온 어머니 굴바구니에는

돌중게 몇 마리 기어나왔습니다

 

어두운 밤바다에서는

그해의 마지막 눈이 내리고

뒷산에서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두운 방 안에선 엉엉 울음소리도 났습니다

 

그때마다 당집의 울타리 돌담에다가는

몇 개의 돌이 얹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덧 알 수 없는

밤이 지나고

 

그해 호망너머 긴뿌리에서 어린 가오리를 보았습니다


                                                       -<<먹염바다>>, 실천문학,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