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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출간 일지] 아이처럼, 바람처럼, 메아리처럼

by 종업원 2019. 4. 24.

[출간 일지] 2019. 4. 21_아이처럼, 바람처럼, 메아리처럼


진주에서 진행한 글쓰기 강좌 2회차. 늘 그렇듯 이미 형성되어 있는 커뮤니티에서 진행하는 강의는 예정된 시간을 넘기고도 끝날 줄을 모른다. 3회차 강좌여서 강의 형식이 적합하지만 할 수 있는만큼 글을 써보기로 한 터. 구성원들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주고 받노라면 의도없이 도착하는 크고 작은 깨침의 순간으로 웬만한 피로는 어느새 온데간데 없어진다. 정제되지 않은 글을 읽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런 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고 조언 하는 일은 쉽다. 어떤 글이든 그 사람의 이력이 그림자처럼 드러나 있기 마련이어서 곳곳에 작은 의욕의 기미가 쟁여져 있다. 그곳에 밑줄을 치는 일이면 충분하다. 쓰면서 알게된다고 했지만 쓰고도 알지 못했던 것을 마침내 알아차려 금새 나눌 수 있게 된다. 희미한 밑줄만으로도 깨어나는 기운이 모든 생활글 속에 있음을 오늘도 변함없이, 그러나 오늘도 놀라면서 알게 된다.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탓에 숙제 검사 맡듯이 쓴 글이라 해도 모든 생활글엔 각자의 채널이 가동되고 있다. 그 채널의 주파수를 보다 선명히 잡아내어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힘은 얼핏 개인의 능력이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단 함께 읽고 쓰는 관계성에 기대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마음 놓고 쓸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관계성 속에서라면 형식적으로, 내용적으로 부족해보이는 글이라 해도 누군가는 희미하게 가동되고 있는 채널을 알아보고 밑줄을 친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랜턴을 켜서 서로의 문장을 비춘다. 아무 것도 아닌 문장에 불이 들어오고, 사소한 단어가 보살펴야 하는 아이처럼 귀해지며, 미완성인 글이 애써 키워내야 하는 씨앗이 된다.

<대피소의 문학> 3부 [대피소의 별자리 : 이 모든 곳의 곳간]의 도입부를 열고 있는 <회복의 나무>(2019)라는 작품을 선물해준 김비 작가님께 감사함을 전달하기 위해 책을 선물로 드렸다. 작은 응답이나마 하고 싶어 서명으로 떠올린 구절은 “아이처럼, 바람처럼, 메아리처럼”이다. 지치지 않는 천진함으로, 자유롭고 우연성에 몸을 맡길 수 있는 유연함과 여유로, 그리고 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목소리와 함께 하시길 염원하며 적었다. 누군가의 이름을 적으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이름을 쓰기 전에 떠올려야 하는 말도 있다. 이날 또다른 책에 남긴 서명도 ‘아이처럼, 바람처럼, 메아리처럼’이 되었다. 매일매일 책을 매개로 사람을 만나거나 떠올리며 작은 염원 하나를 서명에 담아 전하고 싶다.

*메아리에 관한 첫 번째 이미지이자 유일한 이미지로 자리하고 있는 김휘승 시인의 <뒤에서 부질없이 꽃피는>을 다시금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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