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

말, 부딪힘의 섬광

by 종업원 2012. 7. 24.


 매끄러운 표면(face)을 따라 자연스레 엮어지는 관계. 동의와 긍정으로 이루어지는 세계. 근자에 우리들의 결속을 가능케 하는 유용한 네트워크인 페이스 북(facebook)의 세계. ‘좋아요’라는 ‘과잉 긍정’의 주고 받음이 ‘친구’이거나 ‘알 수도 있는 친구’라는 유례가 없는 매끄러운 관계망을 구축한다. 무엇이 좋은지 생각하지 않고 누르는 ‘좋아요’가 만드는 ‘호의의 프레임’ 속에서 만나는 우리는, ‘좋아요’가 ‘오해’를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이해’의 지평을 독점하고 있는 한 영영 서로에 대해 알 수 없을 것이다. 무료’라는 자본제의 호의에 의해 관계양식과 소통 방식을 독점하고 있는 ‘카톡’의 세계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카톡’은 Social이 아닌 privacy의 영역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에 좀처럼 공론화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는데-그건 네가 카톡을 하지 않아서야, 라고 간단 명료하게 묵살되고마는 무수한 경험들-일상적으로 주고 받는 카톡의 말들, 카톡을 통한 소통방식들, 지금 눈 앞에 있는 관계에 기꺼이 무관심해질 수 있는 카톡의 우선성(이것이 바로 무료의 힘!)이야말로 일상과 생활 습관에 내려 앉아 있는 관계 정치, 생활 정치의 한 단면을 보여 주고 있는 것! ‘좋아요’는 분명 모두가 “달라요!(It’s Different!)”를 외치던 자본(Sk telecom)의 입에서 연속되는 것일 터.


 표면이 매끄러운 것은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매끄러운 관계란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관계를 가리키며 말하지 않아도 알거나 말이 필요가 없는, 영영 서로에 대해 ‘개입’하지 않는 관계를 뜻한다. ‘친밀’하다는 것은 연결망, 접속(link)체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대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갈등의 증표가 아닌 관계의 다양한 연결망을 구축하는 상호작용의 에너지에 다름 아니다. 그러니 부대낌의 에너지를 나누고 있는 집단의 표면은 ‘우둘투둘’할 수밖에 없다. 대화는 매끄럽지 않고, 부딪히고 결렬되면서 기어이 ‘결절점’을 만들어낸다. 바로 그 ‘문턱’이 우리와 합일을 결렬시키지만 기어코 그 문턱을 밟고 올라설 수 있을 때 ‘나만의 세계’에서 ‘관계의 세계’로 이행할 수 있는 것이다. 관계는 부딪힘의 ‘섬광’이다. [말의] 주고 받음을 통해서만 열리는 ‘계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되뇌이고 있으며 때때로 '(공)회전' 하는 정동(affect)인 것이다. 관계의 종말은 이 상호작용의 연결망이 끊어진 것을 가리킨다. [우둘투둘한] 대화 없이 관계를 지속한다는 것은 어떤 죽음을 유예하는 것이며 관계의 상호작용을 죽음의 형태로 영속하는 것이다. 자본제-가령, 각종 제도와 관료제 등-는 관계의 망실과 공통적인 것(the common)의 잠식을 통해 삶의 활력(puissance)과 관계의 활력을 ‘무력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