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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둥근' 말의 역사

by 종업원 2012. 10. 18.


이곳이 불타고 있어요’



분명 ‘그곳’은 불타고 있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자신이 자신을 태워 자꾸만 위로 ‘비상’하려는 불꽃이 있는가 하면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단 한번도 꺼지지 않은 장작더미 아래의 ‘남은 불씨’로 내내 타는 불도 있었다. 불과 불이 서로 엉겨 붙어 이내 꺼져버리기도 했고 불을 끄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함께 타버리기도 했다. 때론 함께 타올랐고 때론 홀로 타들어갔다. 말이 있었고 쉼없이 그 말들을 주고 받는 응()하기가 행해졌으므로 그곳에서는 ‘먼지조차 타서 불길이 되곤’ 했다. 타오르는 말 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았지만 그 말이 언제라도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재()가 남았(). 바닥에 깔려 있는 재 위로 다시 불을 찾기 위해 들어선 장작들이, 몸뚱이들이 활활 타오를 것이다. 그러니 타오르는 불에는 장작(몸뚱이)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은 재와 함께 타오른다. 아니 타오르는 불이란 재를 타고 오른 것의 다른 말일 터. 하여, 불은 저 자신도 모르는 역사와 함께 타는 것이다. 영원히 타오를 것 같던 불은, 그 비상하던 몸짓들은 이내 아래로 가라앉아 ‘재’가 된다. ‘나’를 지운 무언가가 된다. 타오는 불 속에서 우리가 영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 오직 더 이상 타오를 수 없는 낮은 자리에서, 잿’더미’ 속에서만 함께가 가능하다는 것이야말로 몸뚱이의 운명이며 세속의 어긋남이지 않을까.


말을 한다는 것은 필시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은 것이리라(發話와 發火).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뜨겁게 타오르냐가 아니며 무엇을 태우는가도 아니다. 타오르는 말-불에서 재의 역사를 읽어내는 것, 발화되는 말에서 개인의 역사가 아닌 함께의 역사를 읽어내는 것이 요체일 터. 한나 아렌트가 ‘말’이란 차이성에 상응하며 다원성의 인간조건을 실현하는 것라고 했을 때, ‘차이성’과 ‘다원성’이 가리키는 것은 “동일한 사람들 사이에서 별개의 유일한 존재로서 살아감”(『인간의 조건, 238)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아렌트가 ‘사회의 조건’이 아닌 ‘인간의 조건’에 대해 사유한 것처럼 ‘차이성’과 ‘다원성’은 동시대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외려 자명한 동시대적 규칙들을 인간의 전역사라는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을 때 획득될 수 있는 자리일 것이다.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을 듣고 응하는 것, 아렌트가 말한 ‘이야기’ 또한 단지 개별 인간들의 삶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이야기”(245)를 가리키고 있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말과 행위의 주고받음에 있어 요체는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그들을 듣고 응하는 것일 테다. 풀어 말해보면, 말을 단지 뜨겁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재의 서늘함으로 전하는 것, 아울러 이와 같은 방식으로 듣는 것(어떤 역사를 감지하기 위해 바닥으로 내려가는 것이야말로 듣기일 터). 전통이란 이러한 상호응대를 통해서만 조형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현명함 또한 활활 타오르는 불-말의 주고받음이 아닌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재()라는 조건을 어떻게 대하는가의 문제처럼 보인다(그러니 재[]의 문제는 곧 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말은 대개 ‘직선’의 형태로 곧장 상대에게 가 박히거나 허공을 향해 비상(초월)해버리기 일쑤이지만 모든 말이 ‘잿더미’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라면 그 속성은 필시 ‘둥근’ 것일 터이다. 타오르는 불꽃도 실은 둥글다. 타는 것은 ‘나-너’의 몸뚱이가 아니라 우리의 ‘재’이기 때문이다. “둥근 것은 아무것도 지울 수 없다”(백무산, 『그 모든 가장자리, 창비, 2012)고 한 시인의 말처럼 ‘타는 것’은 있어도 ‘지워지는 것’은 없다. 말을 한다는 것과 말을 듣는 것은 ‘재’를 조건으로 한다. 결국 듣기, ‘다시 듣는 것’이 요체다.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되는 순간, 평범한 말이 비범하게 들리는 순간은 그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듣기라는 능력은 곧 신뢰를 쌓은 관계의 이력이기 때문이다. 비상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려는 애씀을 통해서만 듣기라는 능력을 키워갈 수 있다. 앎이라는 것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2012 / 10 / 16 / 88회 <시독>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