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철학자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하는 이 강연문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은 연구 주제 및 대상을 ‘연구’라는 영역에 가둬두지 않고 매번 삶의 현장을 불러내는 태도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의 말’과 ‘현실의 말’, ‘연구의 말’과 ‘현장의 말’은 분명 하나의 언어 체계 아래에 있는 것이겠지만 이 말들은 서로 교통/교환되지 못하고 각각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영역을 강고히 하며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언어체계 아래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교통/교환되지 않으니 서로에겐 차라리 외국어처럼 느껴진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겝니다. ‘이방의 말’을 듣는 것이 ‘이방의 말’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회통이나 소통이라는 말로 손쉽게 설명되기도 하는 말의 주고받음은 그러나 무척이나 위험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양창아 선생님의 글을 그저 잘 읽힌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잘 읽힌다는 미덕’은 이론의 말과 일상의 말의 교통/교환을 위해 위험한 경계를 넘어서려는 이 글의 태도를 외려 부정하는 입장을 가질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론의 말과 일상의 말 ‘사이의 흐름’을 만드는 데 애쓰고 있는 이 글을 우리는 위험한 태도로, 조심스러운 태도로, 사려깊은 태도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쓰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읽는 것 또한 그만큼 위험한 일임을 자각할 수 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앎이, 그런 만남이 가능해지는 것이 아닐까요.
‘오해’에 관하여
한나 아렌트에 대한 오해들을 재서술하고 있는 대목에서부터 시작해봅시다. ‘오해를 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진실에 다가선다는 것. 그것은 여러 개의 말들 중에 하나의 말만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외려 하나로 쏠려 있는 말들 주변에 많은 말들을 놓아두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오해란 잘못 알고 있음을 가리킨다기보다 말들을 지우는 문제와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오해를 푼다는 것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한다는 게 되겠지요. 그러니 오해는 ‘해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 저는 오해와 이해 사이에 ‘연구자의 자리’를 놓아두고 싶습니다. 오해를 푸는 사람으로서의 연구자, 아니 ‘오해’라는 관계의 비용을 기꺼이 감내하는 노동을 성실히 수행하는 자로서의 연구자말입니다. ‘이해’란 ‘오해’의 반대말이 아닌 게지요. 오해 앞에 기꺼이 설 수 있는 자,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는 자, 오해를 지워버리지 않고 그 옆에 다른 말을 놓아둘 수 있는 자, 다시 말을 하는 자, 내려치는 말이 아닌 살리는 말을 하는 자, 재서술하는 자. 연구자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연구자의 자리야말로 온갖 오해에 뒤덮혀 있는 곳이겠지요. 오해야말로 말들이 탄생하는 자리가 아닌가, 관계가 조형될 수 있는 중요한 지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친밀성’과의 ‘연대’의 거리
‘오해’가 관계의 지반임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친밀성’과 거리를 둔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때의 친밀성이란 ‘차이’를 억압하고 지워버리는 권력 구조를 의미합니다. 친밀성은 정서의 문제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감각의 문제이며 ‘생활 정치’의 문맥 위에서 이해되어야 하겠습니다. 고립되지 않되 친밀성의 구조에 함몰되지 않는 ‘몸’을 가지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 까요? 특히나 형제애로 점철되어 있는 지역의 지반 아래에서 다른 관계를 시작할 수 있는 ‘대화’는 어떤 방식으로 시작될 수 있을까요? 대학원(제도) 내에서 구성’된’ ‘관계’와 밖에서의 구성’하는’ 관계의 ‘차이’를 통해 그 단서들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그에 대한 경험과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친밀성이란 ‘긴장’이 사라진 관계와 다르지 않아보입니다. 내가 기꺼이 네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 혹은 내가 네 손을 기꺼이 잡는 것을 우리는 손쉽게 ‘연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것은 ‘친밀성’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연대와 친밀성의 거리, 그리고 그 사이의 갈등이야말로 관계 속에서 작은 구원을 얻으려고 했으나 바로 그 관계에 의해 삶이 파괴되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하겠습니다. 그러니 체제(제도)의 힘에 저 스스로를 맡김으로써 조형되는 ‘친밀성’이란, ‘긴장’ 없는 관계이자 비용을 치루지 않는 관계란 ‘생활정치’의 문제와 밀접하게 닿아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주목한 레싱의 말처럼 “그는 많은 사람의 친구가 되기를 바랐지만 누구의 형제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는 구절은 ‘작은 공동체’에 관한 소박하나마 유효한 형식으로 읽을 수 있을 법합니다. 만남이 다시 고립이 되는 상황에 대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으면 합니다. 특히 아카데미 밖에서 보다 자유롭게 운신함에도 몸을 완전히 밖으로 내어놓을 수 없는 ‘조건’에 관해서. (제도) 밖으로 완전히 나가지 않으면 ‘연대’란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물음. 대학원 출신으로, 대학이라는 제도 아래에서(강의나 프로젝트)만 생활의 지반이 마련되는 이 구조 속에서 친밀성과 불화하면서 작은 공동체를 조형하기 위한 연대의 방식은 어떻게 가능할지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잡담’이라는 대화에 관해 : 잡담의 급진화
“아렌트의 ‘공적 영역’은 이러한 ‘모임’, 즉 동료들과 주고받는 소란스런 말들을 통해 구성되는 일종의 관계망이며, ‘사유-행위’란 그 어떤 다른 곳도 아닌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든) 거주하고 있는 바로 이 세계 안에서, 이 세계와 관련하여 다른 세계의 길을 내는 일을 뜻한다.”
_양창아, 「한나 아렌트, ‘말-기쁨’/ ‘말-고통’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어떤 장소에 대한 사유」 중
위 대목의 ‘소란스러운 말’이란 이해와 오해가 교차하고 있는 말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상 영역에서 공적 영역을 구축하려는 노동이야말로 ‘생활 정치’의 요체라 하겠습니다. 양창아 선생님께서도 나와 너가 만날 때만 생겨나는 ‘사이-공간’의 부재에 관해 언급했습니다만 이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전보다 많이 만나고 있지 않은가요? 카페에서, 휴대폰에서, 인터넷에서 우리는 시종일관 만나고 있지 않은가요? 하여, ‘사이-공간’이란 물리적인 영역이 아닌 만남의 양식과 대화의 방식을 가리키는 것이겠지요. 일상적으로 주고받는 대화를 하는 태도야말로 ‘생활정치’의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흔히들 이를 ‘잡담’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어떻게 대화를 ‘잡담’이 아닌 방식으로 조형해나갈 것인가, 아니 차라리 ‘잡담’의 정치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어야 하겠습니다. ‘잡담’을 통해 “우리가 여기 있다”라는 ‘정치’를 수행할 수는 없을까요?
‘잡담’은 말을 주고받는 행위를 사적인 것으로 치부함으로써 공적 영역을 삭제하는 기능 또한 수행한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빈말이란 일상성 속에서 공개적으로 해석된 것을 전달한다. 빈말은 여론으로 바뀌기도 하면서도 사람들은 이 빈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더라는 식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빈말은 무엇을 드러내기보다는 은폐하는 기능을 한다.”
-한나 아렌트, 홍원표 옮김,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인간사랑, 2010, 10쪽.
말하기란 바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겠지요. ‘잡담’이나 ‘수다’ 또한 내부로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바깥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공적인) 말’이 될 수 있으며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면서 공적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지반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공식화된 공적 영역(제도를 통해 마련되는, 할당되는 영역)이 아닌 일상 속에서, 생활 속에서, 소소한 만남 속에서 바로 너와 나의 거리가 ‘정치의 장소’가 될 수 있는 ‘조건’이지 않을까요? 특히나 토호 및 토착 세력들의 권력 구조가 뿌리깊은 곳에서부터 작동하는 ‘지역’에서 ‘공적 영역’에 서기 위해서는 ‘친밀성’의 구조 속으로 자신을 내맡겨야 하며 그 자리 또한 할당된 것이자 언제라도 폐기될 수 있는 무력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잡담’이 ‘빈말’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며 일상적인 대화의 주고받음 속의 ‘오해’를 거부하지 않으면서 시시각각 침입하는 ‘친밀성’의 힘을 밀쳐내며 조형하는 작은 공동체의 형상. 그곳이 지금-여기-우리의 ‘공적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폴) 드 만과 만나서 좋았던 것은 그로부터 뭔가를 배워서가 아닙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과 처음으로 만났던 것입니다. 드 만이 없었다면, 나는 일본문학 교수로 죽도록 따분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옮김, 『정치를 말하다』, 도서출판b, 2010, 55쪽.
“이것들은 드 만에게 보이기 위해 썼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이론적 작업은 1975년에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1975년 예일대학에 객원교수로 감 : 인용자]. 그때까지는 그저 일본의 문예비평가였다고 생각합니다.”
-가라타니 고진, 같은 책, 57쪽.
가라타니 고진뿐만 아니라 사상가들에게 공동체 밖의 체험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지요. 그것은 단지 사상가들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닐 겝니다. ‘나’라는 공동체 밖으로 나간다는 것, ‘친밀성’의 밖으로 나간다는 것, ‘제도’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야말로 ‘목숨을 건 도약’의 일환이겠지요. 기원을 은폐하는 근대문학의 메커니즘을 볼 수 있었던 자리는 바로 공동체 밖이었습니다. 메이지 초기 모두가 근대문학에 미쳐 있을 때 근대문학이 아닌 다른 문학을 상상했던 나쓰메 소세키가 서 있던 자리 또한 공동체 밖(영국)이었습니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라는 명저는 가라타니의 문예비평가적 역량을 발휘한 결과물이 아니라 비로소 문예비평가가 아닌 ‘비평가’로서의 자리에 서서 작업한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단지 미국이라는 조건(공동체 밖)만이 아닌 자신의 작업을 이해해준 폴 드 만이라는 우애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가라타니와 드 만의 대화를 상상해봅니다. 대단한 말들을 주고받았겠지요? 그러나 그 대화는 밥을 먹듯이, 일상적인 말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잡담’이었겠지요. 그 잡담이 가라타니를 비평가의 위치에 설 수 있게 한 동력이 되었겠지요.
제 고민은 이러한 것입니다. 어떻게 ‘말의 자리’를 독점하지 않고 나눔을 통해 다른 관계를 실험할 수 있을까? 일상적으로 나누는 말의 교환이 공적 영역을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의 지위를 상시적으로 나눌 수 있는 ‘정치의 장소’로 전유하는 방식, 일상 속의 혁명, 다름 아닌 잡담에 관하여. 그렇다면 ‘잡담’과 ‘연구’의 거리는 어떠할까요? 제 호흡으로 하는 ‘말’(잡담)과 제 호흡으로 진행하는 ‘연구’의 거리말입니다.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겠습니다. ‘당신의 연구는 어떤 대화를 밑절미로 하는가?’ 일상적인 대화가 ‘삶’과 밀착되어 있다면 제도적인 연구의 동력은 어디로부터 획득할 수 있는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상적인 대화와 제도적인 연구 사이의 거리에 대해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가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잡담’을 급진화할 수 있을 때 연구를 생활 속으로 내려 앉힐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에 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2012. 12. Lo-culture 합평회 1회 <'함께-있음'의 '사이-공간'> 토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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