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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간(출판)

셋!

by 종업원 2024. 4. 20.

여러 차례 살피고 돌본 <우리말꽃> 원고 뭉치

2024. 2. 8

<곳간>에서 세 번째 책을 펴냈다.

우린 우연히 만났지만 내 책장엔 오래전부터 최종규 작가님이 쓴 책으로 가득했다. 2023년부터 여러번 만나며(언제나 최종규 작가님이 부산으로 오셨다!) 서로가 일구는 텃밭에 대해, 걷는 오솔길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날 일어나 최종규 작가님을 만났던 어제를 떠올리면 따뜻한 봄볕이나 여름날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눈앞에 펼쳐졌고, 가을날 쏟아지는 햇살 같은 시간이었구나 싶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말과 글을 모으고 손보고 갈래를 나누고 돌보기 때문에 그 작업을 쫓아갈 엄두도 나지 않지만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처럼, 냇물에 발을 담그고 맑고 시원한 물살을 누리는 것처럼 책을 만들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말과 글이 이어져 마음에 닿아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결을 따라 어깨동무해야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우리말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수수께끼를 대하듯 즐겁게 풀어보고 이름 붙여보는 일이 재미 있었다. 이 공부를, 이 놀이를 끝없이 할 수 있겠구나, 끝없이 이어가야겠구나 마음 먹을 수 있었다.

맑고 깨끗한 말을 쓰는 것 안에 평등과 평화가 깃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높임말이 발달된 탓에 우리말이 높낮이를 따지거나 나눈다고 여기기 쉽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섬기고 아끼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서구 철학자들이 개념을 확장할 때 언제나 라틴어라는 말과 글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늘 부러웠는데, 우리말도 말밑(어원)을 살핀다면 문학이든, 예술이든, 철학이든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으리라 여긴다. 우리말 안에 문학, 예술, 철학, 삶 씨앗이 숨쉬고 있음을 느낀다.

내 깜냥이 부족해서 이 책을 손보고 펴내느라 눈알이 빠질 것 같았지만 이 책이 펼쳐 놓은 숲에서 나또한 느긋하게 하루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펼쳐 누구나 쓸 수 있는 우리말과 어깨동무하며 온누리를 품고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멋지음(디자인)이 시원시원하고, 올곧고, 당당해서 볼 때마다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