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글11 온몸으로 온맘으로 2024. 4.17여기서 저기까지 달려서 다다르기. 늘 장림 주변만을, 매번 큰맘 먹고 달리다가 언제 어디서라도 달릴 수 있을 때 달려야겠다 싶어 여기저길 달려보니 상쾌하고 좋았다. 러닝화를 신지 않고도, 코트를 입고도 몇 킬로를 달려서 오고 가는 맛이 있었다. 그렇게 작은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처럼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여했다. 세희가 북돋지 않았다면 또 미루어졌을 수도 있지만 3월 내내 밀린 원고를 쓰다가 겨우 마감하고 나들이 나서는 마음으로 기쁘게 달렸다.시작부터 끝까지 세희랑 이야기나누며 걷고 뛰고 오르고 내려가고 쉬고 마시고 웃고 떠들었다. 다시 떠올려보니 거의 울고 싶어질 정도로 온몸, 온맘으로 누렸구나 싶다. 2019년즈음에 ‘문학의 곳간’ 친구들이랑 대마도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었는데, 그때.. 2025. 3. 6. 짓는 동안 흐르는 콧노래 2025. 1. 28‘밥 먹을 시간이 없다’는 말을 몸으로 겪는 나날이다. 문턱 앞에서 풀이 죽거나 머뭇거리는 버릇 탓도 있겠지만 여러 일을 해내야 하는 때여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첫끼를 챙길 때가 잦다. 밀린 일이 있어도 끼니만큼은 느긋하게 챙겨왔는데, 요즘은 끼니를 건너 뛰게 된다. 늦은 끼니를 챙기며 이 바쁨이 무얼 말하는지 가만히 돌아보았다.지난 일요일엔 곳간 새책 디자인 이야기를 나누려 장전동 그린그림 작업실에 갔다. 내가 사는 곳이 다대포 근처이니 지하철 1호선으로 놓고 보면 끝에서 끝이다. 그런 까닭에 예전엔 운전을 해서 가곤 했는데, 지금은 지하철을 탄다. 서부산에서 동부산까지 가는 동안 정차하는 역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모습이 제각각이라 드문드문 그걸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이 재밌다... 2025. 1. 28. 딴생각 2024. 12. 24 잡지 편집회의를 끝내고 이어지는 뒷자리를 뒤로하고 먼저 나섰다. 정영선 작가님을 모셔다 드리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색함을 쫓으려 내어놓는 실없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책 만드는 이야기, 소설 쓰는 이야기, 즐겁게 누리는 이야기, 답답한 마음을 슬쩍 내비치는 이야기를 술술 잇다보니 광안리에서 북구로 넘어가는 길이었지만 이어서 김해까지, 창원까지도 갈 수 있겠구나 싶기도 했다. 주거니 받거니 잇던 이야기가 아파트 단지 앞에 도착하면서 뚝 그쳐야 했지만 그것도 괜찮았다. 한 달 만에 차에 기름을 넣고 마트에 들러 고등어도 두 마리 사고, 두부랑, 고추, 안 깐 마늘도 한 봉지 샀다. 닭튀김을 내어놓는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걸보곤 속으로 ‘그야말로 크리스마스이브군’이라 .. 2025. 1. 14. 나날쓰기 2025. 1. 3글쓰기를 미룬다.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룰 수 없을 때까지. 어제 써야 했던 글을 쓰지 못했기에 오늘 써야 하는 글도 쓰지 못한다. 쓰지 못한 글쓰기 굴레에 갇혀 숨가쁜 나날이 이어진다. 청소를 미룬다. 지저분한 자리를 피해다닐 순 있지만 그럴수록 더 눈에 밟힌다. 먼지가 쌓이고 얼룩이 진다. 너저분하고 어수선하다. 그 모든 살림에 등을 돌리고 앉아 글쓰기를 미룬다. 작업실 가는 길에 이오덕 일기를 읽었다. 한길사에서 펴낸 ⟪이오덕 교육일기・2⟫(한길사, 1989)와 양철북에서 펴낸 ⟪이오덕 일기・4⟫(양철북, 2013)를 챙기고선 지하철에서 펴보았다. 4권은 1992~1998년 사이에 쓴 글을 추린 것인데, 지난달 이응모임에서 함께 읽은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최종규 편집.. 2025. 1. 5. 작업실 가는 길 2024. 12. 19잠자리 자세가 잘못된 탓이라 여겼는데, 아닌 모양이다. 보름이 지나도록 목과 어깨 결림이 나아지질 않는다. 저녁이 되면 더 결리고 밤이 되면 그만 누워야할 정도로 불편하다. 꽤 오래 달리지 못했고, 작업실도 나가지 못했다. 마음이 바쁜 탓이다. 그럴수록 이상하리만치 일머리가 잡히질 않는다. 며칠, 아니 몇 주를 그냥 흘려보낸 듯하다. 오늘은 점심을 든든하게 챙겨 먹고 간단히 도시락도 싸서 작업실로 간다. 지하철역까지 1km를 천천히 달렸다.강의가 없는 날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지하철은 걷고, 뛰고, 읽는 일과 이어져 있지만 무엇보다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렇게라도 부대끼지 않으면 사람들과 잠시라도 섞일 일이 없을 것만 같다. 지난 주 그린그림과 디자인 회의하러 .. 2024. 12. 19. 흥건한 땀 2024. 12. 4강의를 마치고 강의실을 나서서 종종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가는 동안 겨드랑이에 땀이 가득하다는 걸 알아차린다.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일거리를 쳐내려 숨가뿐 일꾼처럼, 미로를 빠져나가려 허우적대며 길찾는 사람처럼, 모두 떠난 자리에 남아 홀로 뒷수습을 하는 쓸쓸한 사람처럼 오늘도 강의실에서 남몰래 땀을 흠뻑 흘렸구나. 무대에 선 배우나 가수라면, 운동장을 뛰는 선수라면, 일터에서 몸을 바삐 움직이는 일꾼이라면 이마에서 뺨을 타고 흐르는 땀이 잠깐이라도 반짝일 수 있겠지. 겨드랑이에 흥건한 땀이 강의실 바깥에서 차갑게 식는 순간, 강의 하는 동안 알아차리지 못한 안간힘이 잠시 수치스럽다. 동시에 여전히 안간힘을 쓰며 버텨내고 있구나, 무언가를 붙들려 애쓰고 있구나 싶기도 해 .. 2024. 12. 15. 흐르다 2024. 11. 17 손수 밥을 지어 먹을 때마다 빠짐없이 ‘정말 맛있구나’라 여겨져 즐겁다. 내 어머니는 이런 나를 떠올릴 때마다 혼자서 밥해먹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얼마나 힘드냐고 걱정하시지만 아주 가끔 몸이 아플 때를 빼곤 힘들거나 귀찮다 여긴 적이 없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또 어찌보면 꽤나 놀라운 일이다. 요즘은 살림을 흐르게 하는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일에 대해 곰곰 생각해볼 때가 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까지 얼추 1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300m 정도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해서 비가 많이 오거나 많이 지칠 땐 가끔 택시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고, 늘 조금도 힘들지 않다 여긴다. 집으로 가는 길이니 당연하지 않나 싶다가도 문득 이 힘이 어디서부.. 2024. 11. 22. 달리기 살림⏤코로만 숨 쉬기(4) 2023. 11. 16 작업실이 춥고 몸도 좋지 않아 일찍 퇴근하는 길에 ‘카파드래곤’에 들러 원두를 샀다. 집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기에, 혹여라도 커피가 없어 작업이 중단될까 오늘도 괜한 염려를 하며. 지난번에 구매했던 원두 두 종류에 대한 후기를 전하며 신맛이 나는 원두를 내릴 때 부딪친 문제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아마도 사장님 또한 퇴근을 준비하는 듯했지만 이내 신맛 나는 원두를 갈아서 커피 한잔을 내려주신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동안 그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이야기를 건넨다. 자신은 20g이 한잔 양인데 이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원두가 부풀어오르는 이유와 어떤 방식으로 내리는 게 좋은지, 신맛이 나는 원두와 강하게 볶은 원두를 내릴 때 물온도는 어느정도가 적당한지, 정해놓은.. 2023. 11. 17. 새야! 2023. 11. 11 오랜만에 뵌 어머니 얼굴이 희고 밝아서 안심했다. 낮에 최종규 선생님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가을햇살 표정이 밝다고, 그래서 나도 따라 밝아지는 것 같다 전했는데 그 햇살이 어머니에게도 닿았구나, 어머니도 오늘 가을햇살을 머금으셨구나 싶었다. 지난번 뵈었을 때보다 걸음도 좋아보이고 목소리에도 힘이 실려 있어 나도 덩달아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다며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며 이제 남들과 똑같아 보인다고 해주셨다. 내게 내려앉은 가을햇살을 보셨나보다. 앉아서는 10분도 이야기하기 어려우셔서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 아래에 난 작은 종기부터 이웃을 통해서 산 햅쌀이 참 좋더라는 이야기를 거쳐 아버지가 이달 용돈을 지나치게 많이 썼다는 푸념과 고.. 2023. 11. 14. 긁어내고, 벗겨내고, 지우는 글쓰기 ‘하얀 바탕’이 지운 것들 글쓰기는 없던 무언가를 새롭게 더하는 일이 아니라 있던 것을 발견하거나 무언가를 빼고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생활 속에 소리 없이 쌓인 더께를 벗겨내는 것만으로도 ‘몰랐던 얼굴’을 만나게 되는 청소처럼 말이다. 하얀 바탕 화면 위에 검은색 글자를 ‘채워’나가는 작업을 글쓰기라 불러왔지만 외려 ‘하얀 바탕’을 ‘긁어’내고 ‘벗겨’내는 일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앞에 놓인 ‘하얀 바탕’은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 하는 ‘백지’라기보단 부대끼며 살아가는 동안 원치 않는 역할을 떠맡거나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동안 쌓인 더께에 가깝다. 윗사람 앞에 설 때, 학교에 갈 때, 친구를 만날 때, 오늘도 누군가가 되어야 할 때마다 우리는ᅠ자신을 지우고 ‘하얀 바탕’이 된.. 2023. 7. 22.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