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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단상5

종강_멸종 위기종이 사는 서식지 2018. 12. 11 “생존주의가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쉽게 ‘도태’나 ‘낙후’로 규정됩니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공부라고 하겠습니다. 무언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멸종’한다는 것입니다. 떠나는 것도 아니고 밀려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종(種)이 깨끗하게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멸종이란 그 종이 살아가던 ‘서식지’가 파괴되었다는 말입니다. 다시 변주해서 강조하고 싶습니다. 로컬(local)이란 어떤 종이 살아가는 서식지입니다. 멸종 위기의 종들이 서식하는 곳이 오늘, 각자의 장소입니다. 로컬은 멸종 위기종들이 살아가고 있는 군락.. 2018. 12. 13.
마지막에 하는 말 2017. 12. 12 이번 학기도 하나 둘 종강을 하고 있다. 나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일러 '제자'라고 칭하는 치들을 은근히 경멸해왔다. '제자'란 '선생'이라는 관계망 속에서 성립가능한 명명일텐데, 지금 어디에 '선생'이 있는가! 이제는 강의실에 앉아 있는 이들을 일러 '학생'이라고 부르는 것조차 계면쩍고 어색하다. 늘 그래왔듯 1학년 교양 수업을 맡은 이유도 있겠지만 대체로 수업에 관심이 없고 질문을 해도 눈만 끔뻑일 뿐 입술은 요지부동이다.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상황을 별로 불편해하지도 않을 뿐더러 귀찮아 하는 티를 노골적으로 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ppt를 활용하지 않으면 집중을 이끌어낼 수가 없고 대부분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거나 엎드려서 잠을 잔다. 흡사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간 모습.. 2017. 12. 12.
‘플라자’ 앞에서 외친 ‘플리즈’-어떤 강좌 후기 2015. 6. 5 강좌 장소가 ‘학생 플라자’라는 문자를 받았음에도 나는 바삐 등교 하는 학생들을 붙잡고 연신 ‘학생 회관’의 위치를 물었다. 그 정도 물었으면 잘못된 위치라도 가르쳐줄만 한데 ‘그곳’을 아는 이가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 이제 대학엔 ‘학생 회관’ 따위는 없는 것이다. 강좌 시간에 임박해서야 나는 학생 회관이 아닌 학생 플라자를 떠올렸다. ‘플라자’를 앞에 두고 그 앞을 30분동안 헤매었던 것이다. ‘학생 플라자’는 ‘학생’을 위한 것인가, ‘플라자(시장)’을 위한 것인가. 아니 이렇게 물어야 한다. 학생들은 플라자를 원하는가, 회관을 원하는가. 초국적 기업이 학내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휘황 찬란한 광고판을 내걸고 버젓이, 맹렬히 영업을 하고 있는 판이니 학생들이 회관보다 플라자를 원.. 2015. 6. 5.
수업―증여―패스 2015. 1. 27 겨울 계절 학기 중에 학생들과 함께 본 영상 클립 하나를 올려둔다. 이 영상을 처음 본 건 2013년 겨울이었지만 수업 자료로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증여'와 관련 하여 세미나를 한번 만들어볼 요량으로 입문서격으로 읽기 시작한 우치다 타츠루와 오카다 도시오의 대담집 (김경원 옮김, 메멘토, 2014)을 출퇴근 길에 맛깔나게 읽던 중에 증여와 반대급부의 인류학적 작동을 훌륭하게 표상해주는 축구를 예로 들면서 는 지침이 인상적이었던 터라 오래 전에 써두었던 메모를 '현장'에서 풀어보았다. 마수미(Brian Massumi)가 축구(의 패스)를 정동(affect)이라는 힘의 흐름을 설명하는 예로 든 바 있지만 내겐 패스(pass)를 '증여'와 연결 짓는 우치다 타츠루의 언급이 보다 인상.. 2015. 1. 27.
운동 선수가 마시는 공기(2) 2015. 1. 9 작년 22일부터 시작한 계절 학기가 끝나간다. 잠깐 쉴 틈도 없이 이어진 수업이라 지난 2학기가 해를 넘어 진행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계절 학기가 꼭 필요한가라는 자문엔 여전히 아니올시다라는 변함없는 자답을 하곤 있지만 예상하지 못한 생산성과 마주하게 되는 보람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규 학기라면 4개월동안 일주일에 한 두번 나가는 수업을 3주라는 짧은 기간동안 매일 같이 나가서 '수업하는 몸'을 유지하고 그 상태를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을 우선 언급해둘 수 있겠다. 시간 강사 신분으로 16주를 일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정규 학기란 비정규라는 강사 신분을 매순간 체감하고 또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강단에 서서 무언가를 .. 2015. 1.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