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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11

살림에 깃드는 작은 날개짓 2025. 1. 19 연산동 '카프카의 밤'에서 잇는 아홉번째 걸음을 함께 했다.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겠다 싶었지만 오고 가는 3시간 동안 손보는 책 원고를 들여다보면 되겠구나 싶어 나섰다. 운전을 해서 가면 조금 더 일찍 닿을 수 있다해도 가만 생각해보면 내내 차에 메인다는 뜻이니 두손 두발이 차에 묶여 있는 셈이다. 그래서 40분 일찍 나서기로 한다. 가끔씩 작은 생각이 깃들며 저절로 트이는 살림 자리를 만날 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에 가는 길이어서일 테지. 새벽부터 모임 자리를 펴려 고흥을 나선 이와 밤늦도록 불밝히는 책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오덕 어른이 남긴 글을 나누는 자리로 가는 걸음이니 살림이 깃들 수밖에.⟪이오덕 일기⟫를 곁에 두고 이야기를 나눈 아홉 걸음. 다시는 오지 .. 2025. 1. 19.
눈을 크게 뜨지 않아도(만화책 읽기 1) ―다카하시 신, <좋은 사람>1, 2(1993 한국어판 1998) 2024. 10. 3 지난 일요일 이른 10시부터 최종규 선생님을 이끔이로 삼아 이오덕 어른이 펼친 뜻을 따라 걸어보는 모임을 마친 뒤, 이어서 부산에서 펴낼 어린이잡지 회의를 하니 늦은 5시가 훌쩍 넘었다. 최종규 선생님과 함께 중앙동 곳간 사무실로 넘어와 책 펴내는 이야기를 나눌 참이었는데, 저녁거리를 사러나가는 길에 어제 사지 못한 책이 눈에 밟힌다고 해서 보수동책방골목엘 들렀다. 일본 문고본 여러 권과 보기 드문 잡지 몇 권을 챙겨 돌아나오는 길에 만화책으로 꽤나 유명한 국제서점에 들렀다. 최종규 선생님은 그곳에서도 귀신 같이 숨은 책을 척척 찾아내어 살펴보시길래 책방 구석까지 들어가서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만화책 더미를 훑었다. 그러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만화책 꾸러미를 보곤 최종규 선생님께.. 2024. 10. 3.
가위바위보―살림글쓰기를 열고 닫으며 2024. 8. 29 곰곰 생각해보면 ‘모임’이야말로 잘 가꾸고, 잘 꾸리고 싶은 살림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그럴듯한 성과를 내기 위한 워크숍이나 프로젝트, 널리 알려진 이를 좇고 기대어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강연은 모임과 그야말로 다른 결을 가집니다. ‘모임’은 특별히 이끄는 힘도, 대단한 무엇도 없는 작고 느슨한 이름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 힘으로 가득합니다. 모임은 ‘모으다’에서 왔겠지요. ‘여러 사람을 한 곳에 오게 하거나 한 단체에 들게 하다’는 뜻 안에 ‘한데 합치다’, ‘쌓아 두다’, ‘한곳에 집중하다’라는 갈래와 이어집니다.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어떤 일을 하려고 자리를 열어 사람을 모은다는 뜻도 있지만 ‘무언가에 이끌려 한 자리로 찾아오다’라는 갈래로도 풀 수 있습니다. ‘모임’을.. 2024. 8. 30.
일 하는 사람(1) 2024. 5. 18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업을 하고 잠시도 쉬지 않고 차를 몰아서 강릉까지 왔다. 거리로 치자면 400km가 넘는데, 가까운 곳조차 차로 가보지 못했기에 여러모로 긴장이 되었지만 방법이 없어서 차를 몰고 먼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포항을 지나고 울진 어귀에 이르렀을 때, 거리로 치자면 200km 정도 지났는데 그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7~8년 전에 내 친구 세희가 늦은 밤 차를 몰고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그때 세희가 내게 이르기를 ‘일 마치자마자 너 보려고 쉬지도 않고 한 달음에 온 거야. 너가 너무 보고 싶어서’라고 했는데, 난 그게 세희 특유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여기고 한 번 씩- 웃어주고 말았는데, 오전부터 오후까지 한숨도 쉬지 않고 일한 뒤에 곧장 강릉까지.. 2024. 6. 4.
셋! 2024. 2. 8 에서 세 번째 책을 펴냈다. 우린 우연히 만났지만 내 책장엔 오래전부터 최종규 작가님이 쓴 책으로 가득했다. 2023년부터 여러번 만나며(언제나 최종규 작가님이 부산으로 오셨다!) 서로가 일구는 텃밭에 대해, 걷는 오솔길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날 일어나 최종규 작가님을 만났던 어제를 떠올리면 따뜻한 봄볕이나 여름날 시원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눈앞에 펼쳐졌고, 가을날 쏟아지는 햇살 같은 시간이었구나 싶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말과 글을 모으고 손보고 갈래를 나누고 돌보기 때문에 그 작업을 쫓아갈 엄두도 나지 않지만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처럼, 냇물에 발을 담그고 맑고 시원한 물살을 누리는 것처럼 책을 만들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말과 글이 이어져.. 2024. 4. 20.
뒤쫓다-뒤따라가다-뒤에 서다-돌보다 ‘뒤쫓다’는 낱말을 앞에 놓아두고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해요. 국립국어원 표준대사전엔 ‘뒤-쫓다’를 “뒤를 따라 쫓다”와 “마구 쫓다”라고만 풀이되어 있습니다. 풀이말엔 나오지 않지만 ‘뒤쫓다’는 무언가를 바로 잡기 위해, (도망가는 무언가) 뒷덜미를 잡기 위해, (잘못된 무언가를) 바로 잡으려는 태도가 배어 있는 듯합니다. ‘바로 잡기’는 ‘손아귀로 움켜쥐는 일’과 이어져 있다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 낱말을 풀어볼 수 있지 싶어요. 뒤쫓는 건 바로 잡기 위해서라기보단 혹여나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놓쳐버리면 다시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써 뒤를 쫓아 가는 것이겠지요. (바로)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깁니다. 그.. 2024. 1. 24.
살림 씨앗(3)_바람, 늘, 어린이 ㅎ : 제가 요즘에 곳간에서 나온 을 읽고 그거 때문에 ‘여행’에 심취해 있거든요. (곳간지기 : 오~~!) 뭔가 말만 나오면 여행을 떠올리게 되는 게 있는 거 같아요. 바람이 ‘여행하는 숨결’이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그래서 이렇게 풀어봤어요. “다대포에 4월이 오면 사스레피가 내쉰 숨결과 마른 파래와 조개들이 내쉰 숨결이 한 데 어울려 봄맞이 하러 갑니다.” 제가 사는 다대포에 사스레피나무 군락이 있어요. 3월이나 4월이 되면 사스레피나무에서 작은 꽃이 피는데요, 향기가 엄청나답니다. 그래서 사스레피나무 군락과 제가 사는 집은 꽤 떨어져 있지만 바람이 불면 저희 동네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벌써 냄새가 다르죠. 특히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 불잖아요. 그러면 냄새를 맡게되는데 여러가지 향이 난답.. 2024. 1. 22.
살림 씨앗(1)_우리는 말숲으로 간다 부산에 터한 출판사 과 전남 고흥에 터한 우리말 사전을 짓는 숲노래(최종규)가 함께 '살림사전' 쓰는 자리를 엽니다.매달 부산 중앙동 '곳간'에 둘러앉아 각자가 돌봐오거나 돌보고 싶은 살림 낱말을 꺼내서 풀고 손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아래와 같은 순서로 펼쳐볼 참입니다. ① 각자가 낱말을 고르고(영어, 한자, 우리말 가리지 않고) ② 고른 낱말을 우리 나름대로 풀이해보고 ③ 국립국어원 사전과 숲노래(최종규) 사전과 비교해보고 ④ 함께 손질합니다. 🌳 함께 꾸릴 살림사전은 아래와 같은 길을 트며 나아갈 참입니다. 1. 한 사람이 엮는 낱말책을 여러 사람 손길로 읽고 짓습니다. 2. 함께 나눌 낱말책을 우리 손빛으로 스스로 짓고 나눕니다. 3. 우리는 누구나 글님·그림님·별님인 하루를 폅니다. ⏤우리는 말숲.. 2023. 11. 7.
평범하게 들썩이는 : 일상을 탐험하는 다섯 개의 오솔길 평범하게 들썩이는 : 일상을 탐험하는 다섯 개의 오솔길 길을 가다가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줍는 사람이 있습니다. 뭔가 대단한 걸 발견한 건 아닐 겁니다. 바닥에 있는 것을 주워 올릴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주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바닥에 버려진 것은 누군가의 줍는 몸짓으로 잠시 특별한 것이 됩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나눠가진 일상을 향해 몸을 기울이는 일, 허리를 숙여 바닥에 있는 무언가를 줍는 일은 살림을 매만지고 다독이는 손길과 이어져 있습니다. 허리 숙여 바닥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 올릴 때 무언가가 반짝하고 나타납니다. 그 반짝임을 문학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2013년 여름부터 시작한 이 이라는 프로그램으로 2023년 상반기의 문을 엽니다. 아무것도 아닌.. 2023. 2. 3.
꿈이라는 비평 2023. 1. 22 1 누군가의 꿈 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꿨다. 그이의 꿈 속에서 노닐다 나온 뒤 나는 사람들을 모아 꿈 속에서 내가 본 것들을 이야기 했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꿈이 말한 것을 알리기 위해 사람들을 모은 것이었다. 꿈을 꿨다기보단 꿈이 나를 찾아온 것이기 때문에 꿈이 내게 말한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생각했다. 잠에서 깨어 꾸었던 꿈을 생각하며 급히 적었다. 어쩌면 비평은 누군가의 꿈에 초대 받은 이가 쓰는 글이라고. 누군가의 꿈에 (초대 받아)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 내가 꾸는 꿈이라 생각되지만 누군가의 꿈에서만 꿀 수 있는 꿈이라는 게 있다. 나는 그 꿈 속을 마음껏 돌아다니며 마음껏 느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꿈은 내가 꾸는 꿈이 아니다. .. 2023.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