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1 기도하는 사람들-김훈, 『흑산』(학고재, 2011) 1. 앞질러 엎드려 절하는 겁박하며 숨통을 죄는 폭력 앞에서 오늘의 사람들은 말을 잃는다. 무릎 꿇리고 굴복당해 말을 빼앗긴 이들은 차마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그 곁에 앞질러 낮은 자리로 내려가 엎드려 고하는 이들이 있다. 꺼질 것을 알지만 매일 매일 말없이 촛불을 켜는 이,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이는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쉬 말하지 않으며 모르는 것을 쉽게 묻지도 않는다. 기도란 절대자 앞에 엎드려 세속의 욕망을 희구하는 제의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촛불 하나를 키고 그 앞에 엎드려 절하는 일이다. 각자의 기도로 지켜낸 작은 염원이 암흑의 침묵을 지나갈 수 있게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된다. 나약하고 연약한 순간 없이는 가닿을 수 없는 장소도 있다. 낮아지는 일, 비상하는 자아의 욕망을 나직이.. 2015. 12. 2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