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전집1 벌레들의 시간 1. ‘사람’과 ‘벌레’ 사이의 말 새로운 빈곤이 우리의 삶을 뒤덮고 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철지난 유행어가 영속하고 있는 시대를 주관하고 있는 새로운 강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생존’이라는 최종 심급이 우리들의 삶을 좌우한다. 누군가가 사라져야 내가 산다. ‘절멸’의 공포가 ‘너와 나’의 ‘절연’을 조건으로 하는 셈인데, 이러한 ‘관계의 종말’은 우리들의 일상이 더 이상 경험으로 번역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경험은 축적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달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이 내·외적으로 영락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험의 빈곤. ‘생존’이 ‘경험’을 대체해버린 시대, 그것을 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라 바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도 ‘생존’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 2012. 3.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