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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자립을 허용하지 않는 세계

by 종업원 2013. 7. 18.

2013. 7. 18

2005년 대학원 시절 부산대 앞에서 종종 봤던 화장지 파는 아저씨를 요즘은 중앙동 지하도에서 본다. 나는 가끔 말도 안 되는 기억력과 눈썰미로 주위 사람들을 놀래가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분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은 그가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2006년 경 부산대 앞의 어느 가게 주인과 말다툼을 하고 있는 모습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무시하지 말라'는 말을 하며 한쪽 어깨에 화장지 묶음을 매고 힘겹게 말싸움을 하고 있던 모습과 그를 마치 걸인을 취급하듯 대거리조차 받아주지 않던 가게 주인의 모습. 강단 있던 그 분이 이제는 중앙동 지하철역 계단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 가끔 껌을 내어 놓고 팔기도 하고 가끔은 그냥 손만 내밀고 있기도 하지만 바닥에 꿇어 앉아 있는 지푸린 그 모습은 앞에 무엇이 있든 변함이 없다. 한쪽에 화장지 더미를 이고 절룩거리며 부산대 앞을 걸어다니던 그 모습이 떠올라 그 분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중앙동 지하철 계단 다음은 어디일까?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자립'이라는 세계. '자립'을 허용하지 않는 세계에서 가까스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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