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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도움닫기 : '함께'라는 이중의 서명

by 종업원 2014. 10. 26.


2014. 10. 21/26

 

 


도움닫기

공부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발구름판을 힘차게 딛고 뛰어오르는 일이다. 그것은 고독(孤獨)하고 독아(獨我)적으로 보이는 공부라는 행위 속에 다른 이들의 손과 발로 일구어낸 노동이 전제되어 있음을 매순간 감각하고 그것을 각인하는 일이기도 하다. 바꿔 말한다면 '공부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홀로가 아니라는 증표이며 나아가 홀로이지 않겠다는 선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공부란 결국 도움닫기다. 누군가가 마련해둔 발구름판을 힘차게 딛고 도약한다는 것. 그 도약의 속도와 거리가 중요하다면 그것은 물리적인 수치의 우열보다 도약을 통한 표현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모든 고유한 표현은 도약을 발판으로 하고 있으며 그 도약을 가능케 하는 발구름판은 다른 이들의 손과 발의 노동으로 만든 것이다. 공부란 바로 그 이치를, 그 생태를 몸으로 익히는 일이다. 

 

이중의 서명

그러니 공부엔 언제나 '이중의 서명(署名)'이 남을 수밖에 없다. 이중의 서명을 함께 쓴다는 것. 그것은 제각각의 도약에, 도약 이후의 고유한 표현에 인장(印章)을 새기는 일이기도 하다. 이중의 서명이란 '도움을 받은 표식'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돌이킬 수 없다'는 표식에 가깝다. 공부라는 이중의 서명은 쓰고 싶다고 쓰고 지우고 싶다고 지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새 남아 있는, 불현듯 스며드는, 그런 이유로 돌이킬 수 없는 '물듦'의 표식이 이중의 서명인 것이다. 

  

희망의 연마

도약 이후,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떤 곳에 착지할 것인가? 다시 말해 어떤 희망을 품을 것인가? 발구름판을 딛고 도약 했을 때, 비약이 허락될 때, 내가 나보다 더 커지는 순간이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라는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온전히 내맡겨지는 것이라도 해도 좋다. 공부를 한다는 것은 도약을 통해 비로소 품을 수 있는 희망의 선택과 결단의 순간을 매번 마주하는 것이다. 결단과 선택의 연마. 그 연마의 연쇄로 희망의 방향이 조형된다.

 

돌이킬 수 없는 공부

그러나 도약과 비약이라는 한 줌의 쾌락만을 향유하고 싶을 때, 발구름판이라는 조건을 부정하고 싶을 때,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 번성하는 자아를 죽이지 못하고 인장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싶을 때, 그런 어리석음으로 한껏 비상하는 욕망은 다른 이들의 손과 발의 노동으로 쌓아올린 발구름판을 태워버린다. 그 누구도 다시 도약할 수 없게 불살라버린다. 어떤 공부(도움닫기)는 없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어떤 공부는 애써 키운 등불을 꺼버리고 사람들이 힘겹게 걸었던 길마저 짓이겨버린다. 공부란, 도움닫기란, 이중의 서명이란, 이 말들 속에 생략되어 있지만 '함께'라는 조건이 잠재되어 있다.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는 것, '공부를 한다는 것', '함께'라는 이중의 서명을 몸에 새긴다는 것은, 실로 무서운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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