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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곳간

문학의 곳간 50회_사치의 가계부를 쓰는 시간

by 종업원 2018. 11. 25.


_<문학의 곳간> 50회_김중미, 『꽃은 많을수록 좋다』(창비, 2016)

_부산 중앙동 '한성1918'_2018. 11. 24


사치의 가계부를 쓰는 시간


늦은 아침을 지어먹고 어제 사람들과 사용했던 그릇들을 씻는 차를 내려 마시니 한낮의 빛이 서재를 가득 채운다. 초겨울 햇살에 평소엔 눈에 띄지 않았던 먼지와 잡티(잔해물!)들이 눈에 밟혀 비질을 하니 다소간 상쾌하다. 늦은 새벽까지문학의 곳간에서 나누었던 말을 되뇌이고 곱씹으며 혹여라도 놓치고 있는 없는가 염려하며 기록해야 것들의 목록을 헤아려보았지만 순간에만, ‘ 현장’(between)에서만 드러내는 장면(scene)이라는 것도 있지 않을까. 휩쓸리고 휩쓸려간 말들과 감정들을 애써 붙들어두기보단 저나름의 길을 가도록 배웅하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어제의 만남들이 남긴 잔상을 뒷모습이라고 부를 있다면 이름을 정확하게 불러 돌려세우기보다 가라고, 어제도 고마웠다고 흔들며 배웅하고 싶다.


어제 저마다가 준비해온 선물을 나누며사치라는 말을 다시금 떠올렸는데, 여느 때와 달리 참석자 수가 적어서인지 사치의 감각을 다르게 체감해볼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내가 말하는사치 조금 부족한 상태로 나눌 때만 발생하는 선물 같은 것이어서 많이 나눌수록 크기가 커진다. 시간을 쪼개어서 말을 보태는 , 조각을 능히 다시 조각으로 나눌 있는 것이사치. 말과 감정을 내어 놓고, 가다듬고, 벼리는 시간이 서로의 자아를 향해 애걸복걸 하는 것이 아니라지금 말하지 않아도괜찮은(충분한) 상태를 경험하는 것이라면 또한 사치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어보인다. 차를 내리는 동안 한달에 한번 돌아오는 <문학의 곳간>사치의 가계부 쓰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 사치의 가계부 목록엔 대차대조표가 아닌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도 충분히 나누었는가, 말하지 않고도 충분했는가, 말과 감정을 충분히 가다듬고 벼렸는가, 넉넉하게 들었는가, 자리를 내어주고 당신의 환대에 응답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