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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아저씨, 어디가세요?

by 작은 숲 2024. 10. 8.

2024. 10. 8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발걸음을 재촉하며 바깥으로 나가려는데 1층 이웃집 현관문이 슬며시 열린다. 혹여나 놀랄까봐 잠깐 멈춰 섰는데, 10살 남짓한 어린이가 천천히 걸어나온다. '안녕~!' 작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성큼성큼 앞질러 나갔다. 지금쯤 진주문고에 닿았으면 좋겠구나 싶은 시간이어서 마음이 조금 바쁘다.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손전화기에서 길안내 어플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방금 지나쳤던 아이가 가던길을 돌아 차 곁으로 다가온다. 창문을 여니 고개를 숙이고 나를 찬찬히 보더니 묻는다. 

아저씨, 지금 어디가세요?

아저씨, 지금 서점 가는 길인데, 왜 그래?

그냥 궁금해서요. 저는 체육관 갔다가 옆에 회관 갈 건데...(뒷말은 목소리가 작아서 들을 수 없었다) 

그래, 잘 다녀와~ 아저씨도 잘 다녀올게. 

안녕히 가세요. 


가끔 온몸에 문신이 가득한 남자가 지푸린 얼굴로 나와 담배를 피는 모습만 보았을 뿐 1층에 어린이가 사는지 몰랐다. 나는 아파트 이웃들과 인사를 거의 하지 못하고 지내는 편이지만, 어르신이나 어린이에게는 먼저 인사 한다. 언젠가 태권도 도복을 입은 어린이가 마치 내가 친삼촌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는데, 그 덕에 기쁜 맘으로 인사를 먼저 해야겠구나라고 배웠다.

진주문고로 가는 길위에서 가을볕과 구름과 노랗게 익어가는 들녘을 흘끔거리며 보았다. 내년 봄엔 자전거를 마련할 참이어서, 이달부터 조금씩 돈을 모으고 있다. 일터든 작업실이든 자전거로 다녀야겠다 마음 먹으니 벌써부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라면 1층에서 만난 어린이와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을 테지. 이름도 묻고, 학교도 묻고, 점심엔 뭘 먹었냐고도 물을 수 있었을 테지. 

아이들 소리가 들려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어느날 저녁_2019년 5월 1일 18시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