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5
곳간에 보내주신 <숲노래 책숲 1013>에 실은 사진책 글을 눈을 반짝이면 읽었습니다. 당장 구할 수 있는 책을 몇 권 찾아보고 사진책 몇 권을 펼쳐보며 며칠을 보냈답니다. 짧은 글임에도 <너를 읽는다>가 참으로 알뜰하게 읽혔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를 다정하게 알려주는 길잡이 글이었습니다. 그러고 눈에 띄는 사진집을 펼쳐보았는데, 이상하리만치 사진이 달리 보이더군요.
친구 로드리고 세희에게 ‘똑딱이 카메라’를 하나 구해달라는 부탁을 해두며 “낱말을 수집하거나 문장 쓰는 것처럼 꾸준히 찍어야 그나마 볼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테니까”라고 덧붙였는데, 새삼 사진 찍기와 낱말을 돌보고 모으는 일이 닮아 있다는 걸 떠올렸습니다. 그 생각 때문인지 좀처럼 반듯하게 모을 수 없었던 ⟪우리 말과 헌책방⟫을 마침내 1~7권까지 모았답니다. (9, 10, 11권은 지난번에 선물로 주셨지요? 8권이 비는데, 즐겁게 찾아보려 해요!) 책상 위에 사진책 몇 권이 어지럽게 널려 있던 어제 오후, 우편으로 보내주신 ⟪골목빛⟫을 받았어요.
어제랑 오늘, 틈날 때마다 ⟪골목빛⟫을 펼쳐서 한 자락씩 천천히 읽었습니다. 지난날 인천 골목 여기저기를 뒤늦게 걷는 부산 사람이 되어, 큰 아이 업고 여러 짐을 챙겨 인천 골목 마실하는 최종규네 가족 사이에 끼어 느긋하게 실컷 구경했답니다. 다 읽기 아깝기도 하고 사진 하나 하나에 얽힌 이야기를 찬찬히 보느라 이제 ‘가을골목’ 앞에 이르렀습니다. 지난번에 고추말리는 이야길 잠깐 하셨는데, 책에 실린 <고추 말리기>를 둘러보면서 골목에 펼쳐놓은 고추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흔하고 뻔한 것들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낱말을 고르고 다듬어 사전으로 여미는 손길과 사진을 담는 눈길이 이어지구나라는 걸 비로소 뚜렷하게 알게 되었어요. 뻔하다고 여기기 쉬운 낱말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지혜롭고 눈물겨운 살림이 고스란히 담긴 것처럼 늘 지나쳐버리는 골목이라는 삶터도 매한가지로 살림으로 가득하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이제야 7월 한 달 서울에서 연 사진 전시회에 가보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제대로 보지 못하구나라며 뉘우쳤답니다. 요 며칠은 선생님께서 자주 하시는 “잘못했습니다”를 떠올리는 일이 잦은데, 어떤 뜻을 품은 말인지를 알 것도 같다 여깁니다. 뉘우칠 일이 많을수록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면서요. ‘그게 아니고’나 ‘왜냐하면’이 아니라 “잘못했습니다”라 말해야겠구나라면서요.
사진 알짬은 “결정적인 순간”이란 표현 안에 다 들어 있다고만 여겼는데, ⟪골목빛⟫을 펼치면서 ‘눈길’이야말로 사진 알짬이겠구나 싶습니다. 날렵하게 잡아채거나 벼락같은 순간을 담는 것도 사진이 지닌 힘이겠지만 ‘눈길’이 없다면 무얼 담든 사진은 텅 빌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골목을 담고, 가난한 사람을 담았던 숱한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을 두고 왜 엉터리라고 말했는지도 알아보게 됩니다. 겉모습만을 그럴싸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아닌 ‘곁’에서 바라보는 눈길로 담은 사진을 보면서 내가 사는 동네도, 내가 만나는 사람도, 내가 터한 둘레도 ‘곁눈길’로 바라봐야겠구나 바라게 됩니다. 그 눈길이 열고 트는 길 또한 있겠지요.
함께 보내주신 <광주 인문학당> 이야기를 읽으며 시나 구에서 슬기롭게 나선다면 여러 일을 너끈히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홀로 상상을 해봤어요. 부산에도 뜻깊은 ‘인문학당’ 같은 곳을 일구면 어떨까. 한쪽엔 도서관이, 한쪽엔 출판사가, 한쪽엔 교실이, 한쪽엔 누구나 묵어갈 수 있는 쉼터가 있는 곳. 누구나 누리고 어울릴 수 있는 터가 필요하다 여기지만 저는 ‘아무나’를 두려워한답니다. 어울리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제대로 어깨동무해야 한다 여기기 때문인 듯합니다. 늘 벗을 그리워하지만 어쩌면 그토록 찾고 나타나주길 기다려온 벗일 수도 있는 사람을 견뎌야 하는 마음으로 대할 때 여러모로 힘이 듭니다. 그건 제가 느긋하지 못하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일 거예요. ‘부산에 여는 인문학당’과 이어진 여러 상상을 하다가 저라는 사람이 벗어날 수 없는 형편없음 앞에 우두커니 멈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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