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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생활

볕을 따라

by 작은_숲 2026. 3. 21.

2026. 3. 7


이번주 오랫동안 강의를 했던 대학에서 1년만에 다시 강의가 있었다. 떠난다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늘 떠나야겠다 마음 먹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강의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대학 강사 또한 떠나라고 하기 전까지 제 발로 떠나긴 어렵다. 나는 다시 강의실로 돌아갔다. 대학은 강사를 강의라는 기계를 돌리는 데 빠질 수 없는 부품 정도로 여기기에 대학엔 나를 반기는 이가 없다. 강의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있었던 곳으로 돌아 '왔다'가 아닌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 '갔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 강의실을 내 현장으로, 내가 꾸리는 살림으로 여겨야겠다는 마음을 붙잡고서 갔다. 꼭 대학 뿐만 아니라 어느 일이든 어느 곳이든 이젠 누군가가 나를 잡아주길 바랄 수는 없다고 느낀다. 내가 붙잡거나 붙들어야 한다. 손아귀 힘이 잔뜩 들어갈수록 쉽게 놓칠 수 있다고 여긴다. 내내 붙들고 있느라 손힘을 너무 많이 써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릴 때처럼 손바닥 안에 달걀을 쥔 것처럼 살포시, 춤 출 때처럼 상대의 어깨나 허리에 손을 살짝 올리고서 한 학기 수업을 꾸려가고 싶다.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강의를 맡았다. 지정 교재가 있지 않아 마음을 편히 먹고서 강의 계획을 짰다.  수업 시간에 함께 글을 쓰면 좋겠다 싶어서 노트를 사러 나섰다. 오후였지만 아직 봄볕이 남아 있어 볕을 따라 걸었다. 건물이 없는 곳으로, 볕이 내리 쬐는 길을 따라 빙빙 둘렀다. 하루치 먹을 거리를 구하러 길을 나선 사람처럼, 다음날 먹을 거리까지 미리 마련할 돈이 없는 사람이기에 단촐하게 볕을 따라 걸었다. 내가 사는 동네엔 이렇다할 문구점이 없어 별 수 없이 다이소로 가야 한다. 새학기라 남은 노트가 충분치 않아 다른 곳까지 이어서 걸어갔지만 마트 안에 입점한 탓인지 노트 종류가 거의 없어 아무래도 수업 전에 다시 들러야지 싶다. 돌아가는 길엔 차츰 볕이 사위어 발자국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했다. 볕을 따라 걷던 조금 전을 떠올리며 좋은 산책이었구나, 바라는 것 없이 볕을 따라 걸었구나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2026년 3월 7일 17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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