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4/15
2026년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가만히 헤아려보았다. 올해는 그만두었던 대학 강의를 다시 시작하고, 출판사 일을 더 즐겁게 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더 많은 걸 느끼며 그 안에서 배우고 싶다. 나를 잘 챙기기 위해선 잘 돌(아)보는 게 우선이다. 2025년을 돌아보며 생각해본다면 아무래도 '참기'를 맨 앞자리에 놓아두어야 할 거 같다. 무언가를 마칠 때까지 억지로 버티거나 안간힘을 쓰며 견디는 일이 아닌 충분히 차오를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리는 참기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게 가장 부족한 면이 참기가 아닐까 싶다. 찬찬히 헤아리지 못한다는 뜻일 테고 참답지 못하다는 뜻이겠지. 버티거나 견딘다 여기지 않고 천천히 채운다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나를 돌보고 싶다.
그 다음 낱말을 '웃기'라고 써두었지만 오늘에서야 울기로 고쳐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다. 늘 즐겁게 웃고 싶다는 바람만큼이나 받아들여야 하는 게 잘 울 수 있는가이다. 울음 만큼은 참기가 아닌 시도때도 없이 울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흐느끼며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고, 울면서 그 자릴 떠나지 않고 머물 수 있어야겠구나 싶다. 받아들이기에 울 수밖에 없다. 내(너) 앞에 선 너(나)가 가여워 운다. 고개를 끄덕이며 운다. 알아차렸기에 운다. 마침내 웃으며 운다. 웃기와 울기는 이어져 있다. 때론 엉엉 소리 내어 울 수도 있어야 한다. 그동안 실컷 웃었다. 그러니 실컷 울 수도 있어야겠다. 나는 울기가 코로만 숨 쉬는 일이기도 하다 여긴다. 운다면 코가 막히겠지만 그럴 땐 더 천천히 숨을 쉬며, 더 크게 숨을 쉬면 된다. 더 천천히 숨쉬라고, 더 크게 숨쉬라고 우는 셈이다.
울기는 울울(鬱鬱)과 이어지기보단 털어내고 씻겨내는 일로 나아간다. 잘 우는 사람이 잘 안을 수 있다. 그동안 누구도 제대로 안지 못한 까닭은 울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소리내서 울 수 있다면, 그렇게 눈물로 씻어내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누구라도 껴안을 수 있겠다 싶다. 이렇게 울 수 있는 나이기에 내 안으로 누군가를 모실 수도 있겠지. 기꺼이 두 팔을 벌려서 한아름 포개어, 아름답게 안을 수 있겠지. 또 곁을 내어주는 누구라도 그이가 이끄는대로 나를 내어놓을 수도 있겠지. (눈)물처럼 거스르지 않고 결 따라 흐르고 싶다. 속에 응어리진 멍울을 달래고 씻어내며 엉엉 노래 부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