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 오늘 하루도 잘 시작하셨지요? 저는 요즘에 성북고개에 살 때 호탕하게 웃었던 어머니 웃음소리를 자주 떠올린답니다. 골목 아래까지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던 그 웃음소리 말이에요.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돈 벌어 살뜰하게 살림을 꾸린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웃음소리 속에서 내가 자랐구나 싶은 겁니다. 절 살갑게 어루만져주진 않았지만 매일매일 커다란 웃음소리로 저를 보살펴 주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겠어요. 오랫동안 제 곁에서 마음껏 웃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그 웃음소리를 떠올리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엽니다. 늘 신나고 힘차게 웃어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그렇게 웃을 수 있답니다. 어머니 오늘도 하하하 웃으시는 날 보내세요.❞
내 몸과 마음에 새겨진 기억을 매만지는 날이 잦다. 내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가 있기 때문일까. 지난 주 본가에 갔을 때, 몇 년에 한 번씩 백권이 넘는 책을 한 번에 사주시곤 했던 까닭을 여쭤봤다. 맨 마지막에 사주신 책이 어떤 것이었는지, 책 값은 어느 정도였는지, 책을 교환한 것인지, 가끔 집에 만화책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건 일하는 곳에서 챙겨온 것인지에 대해서. 별다른 내색을 하진 않으시고, 책을 많이 샀던 것 맞다, 마지막에 샀던 전집은 기억나지 않는다, 백과사전도 샀던 게 맞다, 다달이 책값을 냈었다, 방문 판매자에게 책을 교환한 적은 없다, 만화책을 가져온 적은 한 번도 없다[듣고 있던 아버지께서, 만화책은 내가 가지고 온 거야라고 하신다. 여기저기 눈에 띄던 만화책을 챙겨온 거라고. 그 덕에 <쿵후소년 용소야>, <머털도사>, <쿤타킨테>(초인 킨타맨)와 같은 만화책을 여러번 읽었다.]. 장난감을 한 번도 사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친척이나 이웃들이 사준 장난감도 몰래 버렸다고 말씀하시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유별났다고, 너희들한테 너무 엄하게 굴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곤 너희들을 정말 야무지게 키웠다고, 살림도 그렇게 했다고, 집에 먼지 하나 없이, 너희들 입고 다니는 옷에 때 하나 없이 했다고 하실 땐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은주 엄마, 그동안 애 많이 썼지요? 고생 많았어요, 고맙습니다, 란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셨겠구나 싶다. 가끔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면 아주 조금 긴장하시는 듯한 낌새를 느낄 때가 있다. 이날엔 그런 얘길 여쭙지도 않았는데, 별일도 아닌 일을 두고도 왜 그렇게 때렸나 몰라, 라며 그때 너희들을 너무 엄하게 대했다면서, 왜 그렇게까지 했나 조금 후회가 된다는 말씀을 하신다. 나는 특유의 기억력을 되살려서 부엌에서 어머니가 고무 호스를 들고 어떤 식으로 달려들어왔는지, 어떻게 때렸는지, 매질을 내가 어떻게 느꼈는지를 현장감 넘치게 묘사하면서 함께 와하하, 깔깔깔 웃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날 아침 내 몸과 마음에 어머니 웃음소리가 스며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매 맞던 아이만이 아니라 동네에서 유명했던 '키 작은 아줌마의 웃음소리' 아래에서 자랐구나, 그 웃음소리를 먹고서 컸구나라는 걸 알아차렸다. 돌이킬 수 없는 깨달음이어서 어머니에게 전화로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분명 눈물을 흘릴 거 같아서, 그러면 어머니도 우실 테니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예전처럼 웃지 않으시고 뵐 때마다 아프다는 말씀을 더 자주 하시지만, 나는 지금도 와하하하 웃으시던 그 기질을, 그 힘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작은 몸으로 오래 아팠던 어머니를 슬픔과 안타까움이 아닌 웃음소리로 떠올리고 싶다. 무엇이 어머니를 아프게 했나가 아니라 무엇이 어머니를 웃게 했나를 더 궁금히 여기고 틈날 때마다 하나씩 여쭤봐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