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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구하는 이가 먼저 돕는다6

상복을 입고 묻는 안부―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김애란이 쓴 단편 소설 「너의 여름은 어떠니」엔 다급한 요청이 두 번 나옵니다. 처음은 대학 시절 좋아했던 선배로부터 온 요청이고 그 다음은 어린 시절, 물에 빠졌는데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나 스스로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던 순간입니다. 이 두 요청엔 다행히 응답을 하는 이가 있습니다. 첫 번째 요청엔 ‘나’가 응답을 했고 두 번째 요청엔 ‘병만’이라는 또래 친구가 응답해주었습니다. 그 응답의 흔적이 팔뚝에 남아 있어요. 손이 아니라 팔뚝이라는 점에 주목해봅시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팔뚝을 잡았을까요. 그건 잡은 것이라기보단 붙든 것에 가까울 겁니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누군가의 팔뚝을 붙듭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지 않았을까요. 헌데 손이 아니라 팔뚝을 붙들었다는 건 ‘어긋남’.. 2024. 11. 26.
『대피소의 문학』 저자 인터뷰 문학의 역할이나 소명에 대한 기대가 회의적으로 변하는 시대에 ‘대피소’라는 긴급한 장소와 ‘문학’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왜 ‘대피소의 문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지요? 저뿐만 아니라 참사의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무기력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한동안 ‘구조 요청’에 누구도 응답하지 못했다는 부채감 속에서 지냈습니다. 참사의 사회적 의미나 현실을 진단하는 것이 아닌 참사 현장에 관한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현실’과 ‘현장’의 온도차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깥을 향해 도움을 구했던 이들이 외려 또 다른 누군가를 구해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가령, 유가족들의 투쟁이나 참사 현장에 관한 증언) 아무도 구하지 못했다는 무기력이야말로 재난 시스템이 .. 2023. 12. 7.
『대피소의 문학』출간기념 김대성 저자와의 만남 : 도움을 구하는 이가 먼저 돕는다 ※ 강연신청 : http://bit.ly/2VX4fNY 일시 2019.6.15.(토) 오후 3시 프로그램 3시~3시50분 저자 강연 3시50분~4시 휴식 4시~ 자유로운 질의응답과 토론 장소 다중지성의 정원 (문의 02-325-2102) 오시는 길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 18길 9-13 (서교동 464-56) http://daziwon.com/?page_id=1655 * “생활예술모임 ‘곳간’과 모임 ‘회복하는 글쓰기’ 대표로 활동하는 평론가 김대성의 두번째 비평집” ― 한겨레신문 “바스러져 가는 영혼에 따뜻한 물 한잔…이 시대 문학의 존재 이유” ― 국제신문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에서 문학이 담보해야 할 역할을 묻는다” ― 연합뉴스 “비평가의 마지막 세대 혹은 새 비평 정신의 첫 세대”로 평가받는 문학.. 2019. 5. 30.
<대피소의 문학>(갈무리, 2019) 출간 416세월호 5주기, 출간 마음껏 기뻐할 수만은 없는 오늘, (갈무리, 2019)이 출간되었습니다. 을 지탱하고 있는 두 축 중에 하나가 416세월호라는 사건입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빠른 속도로 침몰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침몰하지 않은 건 416세월호 유가족들이었고, 침몰하는 배 안에서 서로를 구했던 세월호에 탑승한 승객들로 인해 '구조 요청'의 말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구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쉼없이 누군가를 구했습니다. 그 힘에 기대어 '도움을 구하는 이가 먼저 돕는다'는 문장을 쓸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는, 책 출간은 대개 한 시절을 떠나보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 권의 책이 마침내 세상에 나오는 동안 필자는 그 책에 담긴 시절과 결별할 준비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하.. 2019. 4. 16.
도움을 구하는 이가 먼저 돕는다(2) 한데서 부르는 이름 김윤아의 네번째 솔로 앨범 (2016)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한데’서 시작 한다. 가까운 곳에서 부는 바람, 아득한 곳의 물결, 저 멀리서 내려치는 번개 소리가 44초 동안 흐르면 누군가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노래는 시작된다. “너의 이름 노래가 되어서 / 가슴 안에 강처럼 흐르네 / 흐르는 그 강을 따라서 가면 너에게 닿을까 / 언젠가는 너에게 닿을까” 누군가를 잃은 이는 더 이상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 이름을 불러도 대답 없는 적막은 그이가 곁에 없다는 현실을 무섭게 짓누르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너’의 이름이 노래가 되어 세상에 흐른다면 무거운 바위가 짓누르고 있는 너의 이름이 마음 속에 흘러들어와 내 안에서 강처럼 흐르지 않을까. 그 강을 따.. 2018. 3. 18.
아무도 고백하지 않는 밤의 장소 2018. 1. 31 1.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라는 구절을 새삼스레 매만졌던 밤은 한 친구의 ‘집들이’ 초대를 받았던 날이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지만 아늑하고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동안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저녁에 잊을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그곳에 모였던 사람들이 의도 없이 주고 받았던 선물이 매만져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온기처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란 막연하게 편하다거나 언제라도 ‘고백’이 가능한 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차라리 편안함 속에서도 고백하지 않을 수 있는 관계에 가깝다. ‘터 놓는다’는 건 ‘터를 닦는 것’과 분리되지 않는다.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관계’는 친밀성으로 쌓아올린 폐쇄적인 커뮤.. 2018.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