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북고개2

흐르다 2024. 11. 17 손수 밥을 지어 먹을 때마다 빠짐없이 ‘정말 맛있구나’라 여겨져 즐겁다. 내 어머니는 이런 나를 떠올릴 때마다 혼자서 밥해먹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얼마나 힘드냐고 걱정하시지만 아주 가끔 몸이 아플 때를 빼곤 힘들거나 귀찮다 여긴 적이 없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또 어찌보면 꽤나 놀라운 일이다. 요즘은 살림을 흐르게 하는 당연하면서도 놀라운 일에 대해 곰곰 생각해볼 때가 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까지 얼추 1km 정도를 걸어야 한다. 300m 정도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해서 비가 많이 오거나 많이 지칠 땐 가끔 택시를 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고, 늘 조금도 힘들지 않다 여긴다. 집으로 가는 길이니 당연하지 않나 싶다가도 문득 이 힘이 어디서부.. 2024. 11. 22.
어느 부족의 이사 2017. 12. 23 오랜만에 들른 본가 옥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변함없었지만 저 멀리 보이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가 곧 폐교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86년 늦봄, 연산 7동 ‘고개만디’에서 또 다른 만디인 성북고개로 이사 왔을 때 아버지는 이라크에 있었고 어머니는 파출부부터 식당 주방일까지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먼 이국 땅에서 아버지가 보내온 ‘딸라’에 빚을 더해 생애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한 어머니는 하루에 ‘세 탕’까지 뛰고도 고스톱을 치러 다닐 만큼 삶의 의욕으로 넘쳤다. 이농한 도시 빈민 출신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내 부모 역시 부자가 되지 못했다. 다만 육체 노동의 세월 속에서 유일한 재산이었던 ‘몸뚱이’가 빠르게 마모되어 두 사람 모두 나란히 병을 .. 2018. 1. 12.